글쓰기에 대한 단상 : 형용사나 부사를 줄이자

in #kr6 years ago

글쓰기에 대한 단상 : 형용사나 부사를 줄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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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의 저자인 조지 오웰이 말했습니다.

내 작업들을 돌이켜보건대 내가 맥없는 책들을 쓰고, 현란한 구절이나 의미 없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소리에 현혹되었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목적이 결여되어 있던 때였다.

허튼소리를 하고 있는 글은 정치적 목적이 '결여된' 경우라고 말한 겁니다. 어떤 글이든 모두가 정치적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좋은 글이 아니라는 뜻이라고 새길 수 있겠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조지 오웰의 이 글에 부사나 형용사가 꽤 쓰였어요. 대충 무슨 말인지는 알겠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글인지는 감이 안잡힙니다. 그러니 맥이 빠집니다.

글을 쓸 때 형용사나 부사를 쓰지 말라고 재미있게 말한 사람은 스티븐 킹입니다. 그는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이렇게 말했어요.

'......부사는 민들레 같다. 잔디밭에 한 포기가 돋아나면 제법 예쁘고 독특해 보인다. 그러나 이때 곧바로 뽑아버리지 않으면 이튿날엔 다섯 포기가 돋아나고... 그 다음날엔 50포기가 돋아나고... 그러다보면 여러분의 잔디밭은 철저하게(totally), 완벽하게(completely), 어지럽게(profligately) 민들레로 뒤덮이고 만다. 그때쯤이면 그 모두가 실제 그대로 흔해빠진 잡초로 보일 뿐이지만 그때는 이미 으헉!! 늦어버린 것이다'

시인 이산하는 이렇게까지 말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이산하 시인의 산사기행' 중 송광사 불일암 편에 나오는 글이라고 하는군요(재인용입니다).

“문장은 품사들의 배치를 통해 자본의 구조와 의식을 닮아간다. 언어의 달인이라는 시인과 소설가들의 문장구조 속에는 자본주의 발달사가 녹아 있다. 부사와 형용사가 자주 출격하는 작가들의 세련된 언어구사는 주어의 존엄성을 희석시키면서 자본의 고공비행에 기여한다. 의식적으로는 자본에 저항하는 문장이지만 무의식적으로는 이미 자본에 부역하는 문장인 것이다. 그래서 난 가능한 부사와 형용사를 절제함으로써 자본에 저항하는 문장을 쓰고자 한다...."

여기에서도 두 개의 형용사 '세련된'과 '가능한'은 빼도 좋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레이먼드 카버가 했다는 말이 떠오르는군요. 이건 <주간경향>, 김홍민의 문화 발견 가운데 한 꼭지에서 본 겁니다.

레이먼드 카버는 <쓴다는 것에 대하여>(On Writting)에 이렇게 적었다. “작가 제프리 울프가 문학도들을 향해 ‘값싼 트릭은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말 역시 카드에 적어서 붙여둘 생각이다. 나 같으면 ‘값싼’이라는 단어도 빼버리겠다. 그저 ‘트릭은 안 된다’고 한 뒤에 마침표를 찍으면 된다. 트릭이란 결국에는 지겨운 것일 수밖에 없다. 극도로 현란하게 기교를 부린 문장, 또는 시시한 농담 같은 글은 나를 금방 잠들게 만든다. 작가에게는 트릭이나 교묘한 잔머리가 필요 없다.”

형용사 부사를 빼면 감정이 전달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글쎄요, 그런 경우는 형용사나 부사가 읽는 사람에게 필자의 감정을 강요하지 않을까 걱정스럽습니다.

  •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의 <여름 저녁Summer Evening>(1947), "참 재미있는 그림이지요?" 어떻습니까? 여기에서 '재미있는'이라는 형용사가 조금 강요하는 느낌이 들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