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겪은 '이단' 썰
요새 때가 때이니만큼 신천지 등 사이비 종교에 대한 글을 많이 읽고 있습니다. 보면 볼수록 세상엔 참 다양한 사람들이 많구나라는걸 느끼는 하루하루입니다.
군생활 만났던 크리스천 선임
여러가지 글과 방송을 가만히 보다 보니 저 역시 사이비 종교와 닿을 뻔한 계기가 있었던 게 생각이 나서 간단히 남겨 봅니다.
때는 200x년, 저는 군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소위 말하는 '꼬인 군번'이어서 처음 8개월 정도는 개고생(청소 빨래 등 가장 기본적인 사역 담당)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잘 풀린 군번' 선임 ㄱ과 친해지게 됐습니다. 그는 저와 같은 A시에 살고 있었고, 나이는 동갑이었습니다. 그는 부대 내에서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틈만 나면 성경책을 보고, 싸지방에서 설교 영상을 보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저는 대학에서 서양사를 공부했는데, 당연히 커리큘럼 중에 서양 고대문명에 관한 수업도 있었습니다. 중간고사 까지는 메소포타미아 고대문명, 기말고사 까지는 성경 내용(말씀 부분이 아니라 스토리만)을 배우는 수업이었습니다.
이런저런 계기로 ㄱ은 제가 성경에 어느정도 알고 있다는 것을 알고 접근해 왔습니다. 자신과 같이 성경공부를 하면 그 시간은 사역을 면제해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성경공부라는게 다른게 아니었고, ㄱ과 같이 성경 내용에 대해 토론하는 것이었습니다. 삼손이 싸웠던 불레셋인은 누구였나, 요셉의 이집트 탈출에 대해 이집트 역사에는 어떤 식으로 기록이 되어 있나 등등을 이야기 나눴습니다. 다만 가끔은 ㄱ이 다니는 교회의 '말씀 영상'을 보는 조건이었습니다.
부대 내에 크리스천은 많았지만 대부분은 주말에 교회를 다니는 것 이외에는 크게 티를 내지 않았습니다. ㄱ 입장에서는 저와 같이 성경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좋고, 저는 후임병으로 해야 할 여러가지 잡무를 하지 않아도 되니 서로가 만족스러운 거래(?)였습니다.
시간이 흘러 제 밑에도 후임병들이 많이 들어왔고, ㄱ은 제대를 하게 됐습니다. ㄱ과는 둘이 있을 때에는 선후임 관계 없이 친구처럼 지냈기 때문에 ㄱ의 제대 이후에도 이따금 연락을 하게 됐습니다.
드디어 저도 제대를 하게 되는 때가 있었습니다. 간간히 연락을 이어오던 ㄱ을 만나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사는 동네도 근처였으니까요. ㄱ은 자신이 다니던 교회(침례교)를 한번 가보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성경의 '말씀'에 큰 관심이 없던 저는 ㄱ의 교회에 몇번 나갔다가 흥미를 잃고 제대 이후 알바 활동 및 대학 복학 준비로 ㄱ과는 점점 멀어지게 됐습니다.
멀쩡한 교회가 구원파 교회?
시간이 흘러 2014년, 세월호 참사가 터졌습니다. 기성 기독교단으로부터 이단으로 규정받은 '구원파'가 큰 이슈가 됐습니다. 저도 일 관련으로 구원파를 살펴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ㄱ이 다니던 교회가 구원파의 한 갈래라고 소개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ㄱ과는 교류가 끊어진 지 몇년 되어서 직접 물어보진 못했지만, 틀림없이 ㄱ이 다니던 그 교회였습니다. (몇년 뒤에는 유명 연예인이 ㄱ의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려 화제가 되기도 했죠.)
사실 ㄱ이 다니던 교단(ㄴ침례회)이 과연 '사이비 교단'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인터넷 자료를 뒤져봐도 ㄴ침례회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거나, 신천지 식으로 기성 교회에 침투해서 신도를 빼간다거나 하는 일은 딱히 나온 게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 기억으로도 ㄴ침례회 교회에서 소위 말하는 '방언'을 읊는다거나, 찬송을 통해 열광적인 분위기를 만든다거나 통성기도를 한다던가 하는 일은 딱히 없었습니다. 목사가 종말론 이야기를 하는 것도 없었고, 목사를 개인숭배하는 분위기도 없었습니다.
다만 교리상으로는 기성 교단에서 '이단'으로 불릴만한 점은 기억이 납니다. 바로 구원에 관한 부분입니다.
구원받은 날짜 >> 생일
제가 있던 부대는 내무반 입구에 중대 전원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적어 놨습니다. 한 소대원의 생일이 되면 해당 소대원 윗기수 전원이 돈을 모아서 치킨, 피자 등을 시켜 파티를 즐기곤 했습니다.(매일같이 생일파티를 할 수는 없으니 3~4명 정도 모아서 했던 것 같기도 하고..)
제가 ㄱ과 성경공부를 시작할 무렵 ㄱ은 분대장이었는데(소대 상위 10명의 경우 지들끼리 돈을 걷고 소대장이 조금 보태서 생일파티를 했던 걸로 기억남) 생일잔치 때도 그냥 '고마워' 한마디만 하고 '알아서 맛있게들 먹어'라며 반응하고 넘어갔습니다.
어느정도 ㄱ과 친해지기 전에는 ㄱ의 성격이 내성적이어서 그런 줄로만 알았습니다. 조금 친해진 뒤에 ㄱ에게 "왜 생일 때 그렇게 무덤덤한 반응이었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내게 생일은 별 의미가 없는 날이기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인 그 날짜가 나는 중요하다. 그 날짜는 x월 x일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날이 생일보다 훨씬 중요한 날이며, "만약 너가 ㄴ침례회 교회에 본격적으로 다니게 되면 너도 그 의미를 알게 될 거다"라고 말했습니다.
ㄱ의 소개로 ㄴ침례회의 부목사라는 분과 상담을 했던 적도 있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인간과 우주를 창조한 창조자의 존재를 믿기는 하나, 종교적 의미로 믿지는 않는 그런 사람입니다. 부목사 역시 저에게 "나 역시 x월 x일에 구원을 받았다"라며, 자신도 처음에는 성경 속 하나님에 대해 이런저런 의심을 했지만 그런 의심의 단계를 넘어서는 순간이 구원의 순간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역사 연구의 관점에서 성경공부를 시작했던(성경 자체는 초등학생 때 만화성경으로 처음 접함) 저로서는 천국에 가야 한다느니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해야 한다느니 하는 말에 큰 관심이 가지 않았습니다.
이단, 사이비에 대한 생각
제 주변에는 성직자의 길을 걷는 친구도 있습니다. 그 친구의 관점에서 ㄴ침례회는 분명한 이단입니다. 하나님만이 알 수 있는 구원의 날짜를 특정하여 생일보다 중요시 여기는 것이라던가, ㄴ침례회의 유명 목사가 종말론적 주장을 한 것 등을 그 이유로 들 것이라 봅니다.
하지만 기성 교회에 다니지 않는 저로서는('가나안 성도'라고 해야할지, 단순히 창조주의 존재만 믿는다고 해야 할지) 이단인지 아닌지는 크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ㄴ침례회가 구원받은 날짜를 중시하는 것 역시 신앙을 갖게 된 초심을 되돌아본다는 측면에서는 나쁠 게 없지 않느냐는 생각도 합니다.
기성 개신교 교단에서는 '이단 사이비'라고 한 세트로 묶어서 공격하곤 하는데,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기성 교단의 표현으로는 '이단')에 대해 사이비와 동일시할 이유가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기성 교단 중에도 한기총 전광훈 목사처럼 신앙을 빙자하고 자신의 정치적, 경제적 잇속을 채우려는 자들(겉으론 비슷하나 속으론 완전히 다름)도 있고, 이단 교단 중에서도 조용히 신앙생활 이어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신천지에 대해서는 현재로서는 '이단 사이비'로 부르는 것이 적합하다는 생각입니다. 신천지를 잘 모를 때에는 그들 역시 하나의 종교 단체로 봐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만, 다른 교회에 피해를 입히고, 국가적인 비상사태에서도 교단의 이익만을 앞세우는 듯한 모습은 '이단 사이비'라 부르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어느정도 한국 개신교 교단에 대해 아시는 분이라면 ㄴ침례회가 어떤 곳인지 대략 짐작을 하실 것입니다. 물론 기성 개신교에서는 신천지나 ㄴ침례회나 거기서 거기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일반인의 시각에서 '이단 사이비'와 '이단'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신천지도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최소한 기성 개신교도가 아닌 사람들로부터 '사이비' 소리는 듣지 않는 집단으로 거듭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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