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주목하는 세계 중앙은행…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화폐에 관심
국제결제은행 “중앙은행, 가상화폐 발행·관리 주체가 되도록 준비해야”
세계적인 가상화폐 열풍에 지급결제 시스템을 총괄하는 각국 중앙은행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가상화폐 열풍이 결제시스템과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했다는 인식 때문이다.
다만 국제결제은행(BIS)과 주요국 중앙은행은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화폐를 화폐라기보다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정해져 거래되는 금융상품, 자산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비트코인은 투기 자산이며 안정적인 가치 저장 수단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스티븐 폴로즈 캐나다 중앙은행 총재도 “가상화폐는 신뢰할만한 가치 저장 기능을 갖추고 있지 않아 화폐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오히려 각국 중앙은행의 관심은 가상화폐보다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화폐(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에 집중되고 있다. CBDC는 비트코인·이더리움·리플 같이 민간이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발행하는 가상화폐와 달리 중앙은행이 보증하는 디지털화폐다. 가상화폐 가격은 시장에서 결정되지만 CBDC의 가치는 지폐나 동전처럼 정해져 있다. 가격이 수시로 변하는 가상화폐는 가치를 정하는 수단이나 교환의 매개가 되지 못하지만 CBDC는 이런 가상화폐의 한계를 해결할 수 있다.
CBDC는 중앙은행이 종이나 구리를 이용해 찍어내는 지폐·동전(현금)과 달리 계정(account), 토큰(token)처럼 디지털 형태로 발행된다. 화폐 발행 비용이 크게 줄어들 뿐 아니라 결제와 저장이 편리하다는 장점이 있다. 스웨덴은 이미 CBDC 시대로 전환을 준비하는 ‘e-크로네’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덴마크중앙은행은 ‘DNB코인’이라는 내부 전용 디지털화폐를 만들었다.
인천에 있는 가상화폐 채굴 시설./블룸버그
▲ 인천에 있는 가상화폐 채굴 시설./블룸버그
독일연방은행은 가상화폐가 금융 위기를 불러올 가능성을 지적하며 위험을 예방하려면 중앙은행이 직접 디지털화폐 발행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옌스 바이트만 독일연방은행 총재는 “비트코인 같은 가상화폐의 등장은 미래에 아주 심각한 금융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며 “중앙은행은 안전하고 안정적인 CBDC를 만들어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영국, 노르웨이, 중국 역시 CBDC 발행 가능성을 점검하고 있다. 윌리엄 더들리 미국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연준이 자체 디지털화폐 발행에 대한 아이디어를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가상화폐를 투기적 금융상품이라고 정의한 BIS 역시 CBDC 활용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입장이다. BIS는 “거래 효율성과 위험성을 모두 가진 가상화폐가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키는 상황에서 중앙은행은 가상화폐 발행·관리 주체가 되도록 준비해야 한다”며 “각국 중앙은행은 디지털화폐의 보안성, 효율성, 투명성은 물론 경제 전반과 금융시스템, 통화정책에 미칠 영향을 두루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은행도 최근 CBDC 연구를 시작했다. 한은은 지난 9일 금융결제국과 금융안정국, 통화정책국, 금융시장국 등 8개 관련 부서가 참여한 ‘가상통화 및 CBDC 공동연구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고 밝혔다. 한은 관계자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CBDC가 새로운 지급결제 수단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커진 만큼 관련 연구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CBDC가 본격적으로 발행돼 현금을 대체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CBDC를 통해 ‘현금 없는 사회’에 진입하는 데 필요한 보안·결제 기술이 발달한다고 해도 CBDC 발행에 따라 변화되는 중앙은행과 통화정책의 역할에 대한 논의가 먼저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영국 싱크탱크 공적통화금융기구포럼(OMFIF)이 지난해 개최한 회의에서는 CBDC 발행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중앙은행과 일반 상업은행의 역할 충돌이 핵심 이슈로 거론됐다. 계좌 형태의 CBDC가 발행될 경우 가계와 개인이 중앙은행에 직접 계좌를 가질 수 있게 돼 중앙은행은 ‘은행의 은행’이 아니라 ‘모든 경제주체의 은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체코중앙은행 관계자는 “CBDC가 발행되면 중앙은행은 발권, 통화조절, 지급결제 업무뿐 아니라 예금 수신, 대출 등 상업은행의 임무도 수행하게 된다”며 “이 경우 과거 사회주의 국가가 채택했던 ‘단일은행(monobank)’ 체제로 회귀하는 것인지 다양한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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