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장롱 이야기 - 박형준 -
장롱 이야기
박형준
나는 장롱 속에서 깜빡 잠이 들곤 했다
장에서는 항상 학이 날아갔다
가마를 타고 죽은 할머니가 죽산에서 시집오고 있었다
물 위의 집을 스치듯 --
뻗는 학의 다리가 밤새워 데려다 주곤 했다
신방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오동나무 장롱처럼, 할머니는
-- 잎들이 자개붙이에 비로소 처음의 물소리로 빛을 흔들었고,
차곡차곡 할아버지의 손길을 개어 넣고 있었다
나는 바닥 없는 잠 속을 날아다녔다
그리운 죽은 할머니의 검은 머리칼에 얼굴을 묻고
고추가 간지러워 천천히 깨어날 때,
마지막으로 힘찬 울음소리와 함께 장롱에서 --
학의 길고 긴 다리가 물 위의 집으로 돌아가는 소리를 듣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