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리치, 당신이 절대 봐서는 안될 영화

어제 영화 블리치를 봤습니다. 블리치는 일본의 소년만화 3대장 중 하나입니다. 나머지 둘은 다들 아시다시피 원피스와 나루토죠. 이 세 개의 작품 중 블리치가 처음으로 실사 영화로 제작된 겁니다. 개봉일은 2018년 7월입니다만 그동안 아무런 소문도 듣지 못하다가, 넷플릭스에 올라오면서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포스터를 보자마자 손이 덜덜 떨렸죠. 와, 드디어 블리치가 실사 영화화 되었구나! 꼭 봐야지!

4인팟이 구성되었다며, 너만 있으면 5인 큐를 돌릴 수 있다며 꼬셔대는 친구들의 부름을 뒤로 한채, 블리치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 결론을 바로 얘기하자면 - 한 시간 사십 분 동안 내내 고통받았습니다. 지나친 기대 때문에 실망한 것 아니냐구요? 아닙니다. 그냥, 그냥 못 만들었어요. 아주 실망스러운 영화입니다.

우선 블리치 만화를 봤던 팬의 시각에서 풀자면, 등장인물들이 너무 매력없게 묘사된 점이 제일 뼈아픕니다. 이치고는 본래 캐릭터와 어느 정도 맞긴 했어요. 하지만 지나치게 만화적 과정이 섞인 연기를 해서 참고 보기 힘들더군요. 원래 일본 연기톤이 그렇다, 라고 말씀하실 분들도 있겠죠. 하지만 그 노다메 칸타빌레도 즐겁게 봤던 입장에서 말씀드리자면, 이건 우스꽝스러운 과장섞인 톤의 호불호 문제가 아니라 연기력이 문제였다고 봅니다.

사실 연기자만 탓할 수 없는게, 전체적으로 영화 전개가 너무 느슨합니다 보통 이정도로 느긋한 속도로 전개되는 영화는 인물의 감정선을 잡아내기 위해 시간을 들이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이 영화는 인물들이 왜 이런 행동을 하는 지 제대로 이유를 들지 않고 그냥 배우들에게 카메라만 들이밀고 있는 느낌입니다. 처음 호로가 나타나 집 벽을 뚫었을 때, 여동생과 아버지가 어색하게 아파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치고는 그냥 아앗! 이게 뭐지! 하는 표정으로 멀뚱멀뚱 눈만 굴리고 있습니다. 그 때 아, 이 영화는 가망이 없다 생각하고 껐어야 하는건데...

그나마 쿠치키 루키아 배역을 맡은 배우는 연기를 잘 하더군요. 스기사키 하나라는 배우인데, 사실 만화 상의 쿠치키 루키아와는 전혀 닮은 구석이 없습니다. 그래도 영화 배우 중에서 제일 연기력이 돋보이는 (상대적으로) 배우여서,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인간 세계는 지긋지긋해, 라며 눈물 어린 눈으로 아픈 말을 내뱉는 부분에는 확실히 감정 이입이 되더라구요.

쿠치키 뱌쿠야나 아바라이 렌지 역은 너무하다 싶을 정도였습니다. 꽤나 고퀄리티의 코스프레를 보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습니다. 그 말은 즉, 배역이 배우에게 착 달라붙지 못하고 떠있었단 것이죠.

그나마 영화 후반부에 광장에서 이치고가 그랜드 피셔를 처리하고 난 뒤부턴 볼만했습니다. 아바라이 렌지와 이치고의 싸움, 그리고 뱌쿠야의 일방적인 칼질(?) 부분 말이죠. 무식할 정도로 큰 참백도라는 설정에 맞게끔 액션 시퀀스가 잘 짜여졌더군요. 오죽했으면 뒷부분 촬용에 너무 힘을 준 나머지 영화의 나머지를 망쳐버린 게 아닐까하는 의심이 들었을까요.

문제는 또 있습니다. 이 영화는 원작 블리치 만화의 아주아주아주 극초반 내용만을 담고 있습니다. 이제 소울 소사이어티에 끌려간 루키아를 구하러 떠나야하고, 이치고의 친구들도 힘을 발현하는 훈련에 돌입해야하는데, 대체 이 속도감으로 어떻게 영화를 만들 셈일까요. 아마 이렇게 욕을 하면서도 2편이 나오면 볼테지요. 제발, 제발 나아졌길 바라면서요.

영화를 보신 분이 저말고 또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분들은 좋은 평가를 내리셨을지도 모르죠. 혹시 보신 분들이 있다면 댓글 부탁드립니다. 의견 나누고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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