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의심(Doubt)에 관하여 Lectures on the Harvard Classics
사람은 누구나 이상의 가치에 의구심을 품을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것보다 자신의 주장하는 것이 더 가치 있지 않을까. 혹은 양심의 가책에 좌우되지 않고 완력을 권리보다 위에 두는 사람이 위대한 사람이 아닌가. 이런 문제는 누가 결정할까요? 대중 여론이나 어떤 기관이 가진 권위의 몫이 아닌건 확실합니다. 이런 것들은 독단 적이기 때문이지요. 의심이 생기면, 독단은 더 이상 힘을 발휘 하지 못합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이상을 꼼꼼히 비교하고 가치의 문제와 삶의 의미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전통적인 이상이 올바른 것인지가 아니라 이상이 확실하게 실현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고 합시다. [성서]에 나오는 욥처럼, 정당한 사람으로서 불운을 뼈저리게 느낀 사람이라면 사건이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과정에서 정의가 전혀 개입하지 않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갖게 됩니다. 결국 세상은 거대한 사건이나 보이지 않는 힘의 잔인하고 서투른 장난이 아닐까요?
이상이 도대체 중요하기는 한 것일까요? 아니면 한가한 꿈, 환영, 단순한 공상의 놀이일까요? 정신은 물질을 움직일 수 있을까요? 아니면 아무리 해도 제어 할 수 없는 사건을 무력하게 바라볼 뿐인가요? 이런 물음을 던졌다면 여러분은 철학적 문제를 제기한 것입니다. 그 문제에 답했다면, 철학을 한 것입니다.
지적인 문제에는 지적인 해법이 필요한 법입니다. 일단 촉발된 사유는 사태의 밑바닥에 도달하고 나서야 멈출 것입니다. 한 세대에서 잊힌 문제들은 다시 나타나 다음 세대를 괴롭힐 것입니다. 하지만 비판하고 의심하는 능력이 모두 감각을 잃고 위축된다면, 그것은 인류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재앙일 것입니다. 종교의 미덕은 진실성이 있어야 하므로, 그것이 진실하다면 계몽이 진보하듯 수정할 수 있어야합니다. 머뭇거리며 안락한 환영에 매달려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바라기만 하면 이루어지는 가상의 상태가 아니라 실재 상태에 의존하는 것입니다. 가까이에서 열린 마음으로 사물들에 질문을 던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삶의 이상과 희망의 근거를 묻는 것이 바로 철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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