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탈이 무너지는 건 한 순간' 골절, 그 뜻밖의 여정 2탄. 제5 중족골 골절 1주차 체험기

in #kr6 years ago

다친 발등을 꾸욱 눌렀다. 부어서 눌린 채로 돌아올 생각을 안 한다. 하트 모양 자국을 만들어 봤다. 재밌는데?

반깁스를 하고 집에서 뒹굴뒹굴했다. 움직여서 조금이라도 발에 충격이 가면 조각 난 뼈들이 흩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뼛조각을 상전 모시듯 해야 한다. 평소에 '나는 대체로 밝은 사람이야 좀 산만해서 그렇지' 하는 자기 평가를 가졌는데, 그 생각이 무너질 정도로 지겨운 날들의 연속이었다.

마침 내 생일도 다가오고 있었다. 아.. 이러면 더 우울해지잖아 그만 하라굿! 인생 자식아! 중얼중얼 주문을 외웠다. 거울로 보지는 않았지만 내 얼굴은 해리 포터에 나오는 스네이크 교수 표정이랑 비슷해졌을 것이다. 아이고오 얼굴도 못생겨 지는구나 ㅜ 근데 또 주변 사람들한테 진상 피우면 다른 사람들도 힘드니까, 꾹꾹 눌러 참다가 골절 3일째 되는 날 서러움이 폭발했다. 왜냐하면 내가 사랑하는 김치찌개를 만들다가 타버려서.

김치찌개가 타자마자 달려가 가스불을 꺼야 하는데, 목발을 짚고, 한발로 낑낑거리는 30초 동안 홀라당 타버렸다. 어쩌다 보니 불 맛 찌개가 되어버렸다. 이게 어떤 김치로 만든 건데, 연세가 83세인 우리 할머니가 굽은 허리로 직접 농사짓고 담그신 귀하신 김치 한 냄비 (게다가 냄비도 크다구!)를 태우다니. 이 시점에서 나의 멘탈은 무너졌다. 겨우 발등뼈 하나 부러졌는데, 마음속 분노가 폭발해 버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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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잘 때 옆으로 눕고 싶으면 다친 다리를 쿠션에 올리고 대충 이렇게 요염한 자세로 자야 한다. 실물이 요염하다는 뜻은 아니다. 출처: freepik

회사에는 휴직 신청을 하지 않았다. 자동 재택근무 시작. 그냥 병가 내고 한 달 놀아도 월급의 70%가 나오는데, 골절 5주차를 지나고 있는 지금, 생각해보니 좀 아깝긴 하다. 그런데 당시에는 또 열심히 일하는 병에 걸려서, '이 프로젝트는 내가 PM인데, 다른 사람이 이어가기 힘들 거야. 인수인계도 시간이 걸릴 거고'. 하는 알량한(?) 성실함이 또 내 마음속에서 놀고 싶은 자아를 이겨 버렸다. 불치병인가. 내 속에서 진짜 놀고 싶은 자아는 5주가 지난 지금도 그것 때문에 빡쳐 있다.

제5 중족골 골절을 겪은 사람은 알다시피, 발에는 원래도 혈액 순환이 콸콸 되지는 않는데, 발을 심장 아래로 내리면 혈액의 압력이 더 강해져서 부기가 심해진다. 이게 생각보다 진짜 아프다. 무조건 누워야 한다. 그래서 나의 재택근무 스케줄은 대출 이러하다.

  1. 아침 8시 : 일어나서 진통제(겸 수면제) 먹고 2시간 기절
  2. 오전 10시 : 간신히 정신 차리고 앉아서 일을 30분 하고 나면, 아픈 발을 붙잡고 누워서 좀 쉬다가 일하는 걸 반복
  3. 오후 12시: 점심 겸 진통제 먹고 또 3시간 기절
  4. 오후 3시~6시: 30분 근무 20분 휴식 반복
  5. 6시: 밥 먹고 진통제 먹고 기절
  6. 9시: 정신 차리고 일 시작했는데, 드라마도 재밌고 뭐 그래서.. 산만하게 일하다가 결국 새벽 1시쯤 팀장님께 업무 보고

쓰고 나니까 내가 뭘 위해 이렇게 열심히 일했나 싶다. 원래 나 없으면 회사 더 잘 돌아가는 게 진리인 것을. 그래, 뭐 인생은바보 같은 선택과 후회의 연속인 것을 어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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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런 게 인생이지. 출처: 구글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