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별을 쫓는 해바라기 27
신문은 연일 해바라기 모임에 대한 기사를 싣고 있었다. 거기에 박윤도라는 교주겸 회장의 화려한 경력까지 신문들이 들쑤시고 있었다. 어떤 잡지는 집요하게 아버지의 행적까지 세심히 파고들고 있었다. 다소 과장되거나 왜곡된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것이 사실과 부합했다. 더욱이 난숙이 형의 숨겨진 애인이라는 기사는 집요하다 못해 잔인하기까지 했다.
교주 박윤도(31) 사후, 실질적인 해바라기 모임의 회장인 김난숙(27)은 무용 강사 출신의 미모의 재원으로 박윤도와 동거하면서 사회주의 노선에 동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처음에는 무용학원의 강사로 재직 중이었다가 박윤도를 만나면서 그의 용모와 뛰어난 화술에 매료되어, 그에 동조하여 전폭적으로 조직 확장에 나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난숙에 관한 것은 전부 날조였다. 발 빠른 기자들은 나를 만나려고 가게에서 진을 치는 모양이었지만, 나는 지금 곤도라는 자의 형이 운영하는 슈퍼마켓에 점원으로 취직해 잠복 중이었다. 이것도 운이 좋았다고 보면 좋은 편이었다. 마침 점원을 구한다고 출입문에 붙여놓은 쪽지를 떼어들고 곤도의 형을 찾아가니, 당일로 바로 취직이 되었다. 머리도 짧게 치고 유니폼까지 입고 있으니, 곤도도 쉽게 나를 알아보지는 못할 것 같았다.
마침 주어진 임무도 볼록거울을 통해 물건을 훔치는 사람을 잡아내는 감시 역이었으므로, 곤도가 입구에 들어서기만 한다면 쉽게 발견하게 될 것이다. 주인의 눈치를 보아가며, 수시로 전화를 해 보았지만, 나와 마찬가지로 강 형사 쪽도 별 소득이 없는 모양이었다.
"기자들 따돌리느라고 혼났어요. 아예 며칠씩 죽치는 패들도 있었다니까요. 그 바람에 매상이 많이 오르긴 했지만. 오빠 사진이라도 한 장 구해 달라고 성화였다고요. 심지어 오빠 학교에 가서 떼볼 수 있는 것은 모조리 다 떼본 모양이었어요. 호호호!"
"왜 웃어? 이야기하다 말고."
"오빠 학교성적이 너무 형편이 없어서요. 호호. 아예 시들시들이네요."
양희는 계속 호호거리며 웃었다.
"가게는 잘 되고 있다니 다행이고 초혜는 잘 있지?"
"그럼요. 그런데 오빠 애인 소식은 왜 안 물어요?"
"응? 내 애인?"
나는 난숙을 말하는 줄 알았다.
"세영이 말에요. 하루 종일 오빠 걱정만 한다니까요. 호호."
"짜식, 어째서 세영이가 내 애인이냐? 남기 애인이지. 쓸데없는 소리 말고, 가게 잘 보고 있어라. 당분간 여기서 점원신세 못 면할 거 같으니까. 그럼 끊어."
옆에서 세영이가 나 좀 바꿔 줘,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주인 눈치가 보여서 서둘러 끊었다. 전화를 끊고 자리로 돌아가면서 난숙을 생각했다. 먼저 떠오른 것은 우리가 처음 마주 앉았던 그 우중충한 장마철의 눅눅한 어느 찻집이었다.
"제 뒤를 쫓은 이유가 뭐죠?"
송곳으로 찌르면 송곳이 휘어질 것만 같이 차가운 표정을 한 난숙이 턱을 꼿꼿이 세우며 물어왔을 때,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때까지도 제정신을 되찾지 못하고 있었다.
"예?... 그저 비도 오고 심심하고 해서..."
"뭐라고요? 하하..."
그녀는 내 말이 우스웠던지, 나의 우물거리는 모습이 우스웠던지,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여자치고는 조금 큰소리로 웃어젖히는 그녀의 얼굴은 조금 전의 차가운 모습에서 이제는 천진난만한 소녀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완벽한 표정변화였다. 나중에 안 일이었지만, 그녀는 학창시절에 취미로 연극 활동도 했었다는 것이었다. 거기서 배운 표정연기의 일종이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보상할 준비는 되셨는지요? 피해자를 설득하느라고 제 입술과 혀가 부르틀 지경이에요."
"어떻게...?"
"이 아저씨 정말 답답하네. 입술과 혀 좀 적셔 달라는 말이에요. 술 드실 줄 모르세요?"
왜 모르겠는가! 내가 명색이 술집주인인데, 어찌 술 한 잔 못 하겠는가! 더욱이 이런 미인과 함께라면.
"당연히 사야죠. 갑시다."
그렇게 우리의 어색한 만남은 시작되었다. 그런 가운데 난숙은 나를 비롯한 여러 남자들을 번갈아 만났다. 나는 성급한 마음에 그녀를 여관으로 끌고 가 소유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여전히 다른 남자들을 만났고, 나는 수 없이 절교를 선언했고, 다시 만남을 반복했다. 그때 형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우리의 만남은 그런 식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우연히 형과의 만남에서 그녀는 형의 용모와 현란한 화술에 빠져 목을 매달다시피 형의 뒤를 따라다녔고, 나를 팽개쳤고, 형과 같이 잤다고 뻔뻔스럽게 말하지 않았던가!
"너에게 있어 나는 뭐니? 나는 그저 한 번 씹다가 뱉어버린 껌이니? 이 죽일 년아!"
나는 다시 돌아온 그녀에게 소리치며 물었었다.
하지만 난숙은 의외로 담담했다. 그리고 그 담담함을 넘어 아주 당당하게 지껄이곤 했다.
"너는 바로 나. 김난숙, 그 자체야. 너는 내 몸이고 내 정신이야. 나는 너를 떠날 수 없고, 너 또한 나를 떠날 수 없어. 우린 서로 떨어져서 살 수 없는 악어와 악어새야."
"그래. 너 말 잘했다. 너는 악어새라 아무 악어에나 붙어먹고 살 수 있겠지만, 나는 고지식한 악어라 다른 악어의 입속에 들어갔다 돌아온 악어새는 물어죽이고 싶어. 네 몸뚱이라고 해서 함부로 내두를 수 있다는 논리는 내겐 통하지 않아."
"맞아. 무대에서 춤출 때에 내 몸뚱이는 관객들의 것이야. 내가 어떤 남자와 잘 때 나의 몸은 그 남자의 것이야. 그건 너도 마찬가지야. 하지만 너는 내 몸뿐 아니라, 내 마음도 가졌어. 오직 너만이 내 마음을 가졌다는 말이야."
"정신나간 거 아냐? 너는 정신과 육체가 따로따로 논다고 생각해? 정신과 일치하지 않는 육체, 육체와 따로 노는 정신이 어떻게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어? 그렇게 생각한다면 너는 어딘가 이상한 애야. 너는 미친년이야!"
나는 흥분해서 마구 고함쳤다. 어떻게 그 따위 말도 안 되는 논리를 펼 수 있다는 말인가!
"너는 창녀야. 아무에게나 가랑이를 벌려주는 더러운 창녀야! 이 화냥년아!"
나는 울분이 극에 달해 그녀의 뺨을 마구 때렸었다. 그녀를 때릴 때마다 나는 울고 싶었다. 내 가슴에 이렇게 견디기 힘든 상처를 주고도 그녀는 그것이 단순한 종기일 뿐이라고 일축하려 들었다. 차라리 그녀를 죽이지 못하는 나 자신이 너무 비참해 벽에 기대어 숨죽여 울었다.
하지만 그래도 난숙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가게를 드나들었고, 그녀가 보이면 죽이고 싶었고, 그녀가 보이지 않을 때면 내 가슴은 늘 그녀에게로 향해 있었다. 그런 그녀가 이제는 먼 곳에 있다. 이제는 내 손이 미치지 않고 오직 마음만이 지향하는 곳에 난숙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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