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늦은 영화평 - 원스, 비긴어게인

in #kr7 years ago

비긴어게인을 이제 봤습니다. 한 때 영화보고 글 써서 먹고 살 수 없을까를 생각하며 하루에 서너편 씩 영화를 보고 어떤 뻘글이라도 써재끼던 제가 아니니까요.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을 당시만 해도 상영관에 걸린 영화 가운데 안 본 영화가 없었는데..일이 더 많아지고 아기가 생기니 도통 극장을 갈 수도 없고, 집에서 여유있게 영화를 볼 수도 없네요. 아기가 잠든 지난 주말 밤,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cineF란 채널에서 비긴 어게인을 시청했습니다.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원스에 미쳐있던 내가 비긴 어게인을 이제서야 TV로 보게 되다니..당연히 싱스트리트는 예고편도 아직 못봤습니다.

원스를 처음 본 게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어디서 봤는지는 분명히 기억합니다. 연도는 분명 2008년 이전입니다. 2008년에 취직에 성공했는데 원스가 대구 동성 아트홀에 걸린다는 소식을 서울로 필기시험을 치러 가던 KTX안, 씨네21에서 봤거든요. 동성 아트홀은 대구에서 굉장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멀티플렉스가 미친듯이 밀려올 때도 꿋꿋하게 버티며 메인 상영관에 걸리지 못하는 좋은 영화를 싼 가격에 상영해줬기 때문에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모르는 사람이 없죠. 대신 좌석은 꽤 불편합니다 ㅎㅎ

원스를 맨 앞자리에서 봤는데..이후 저는 원스를 예닐곱번 정도 더 봤습니다. 사실 저는 영화를 반복해서 보는 편이 아닙니다. 물론 TV채널을 돌리다 얻어 걸리면 다시 보는 경우는 있지만 작정하고 '이 영화를 다시 보겠다!'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다시 볼 바에는 새로운 영화를 보자는게 제 생각인데..작정하고 다시 본 영화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어둠 속의 댄서' 그리고 '원스'정도입니다.

써 놓고 보니 두 작품에 공통점이 있네요. 음악 영화라는 점(물론 어둠 속의 댄서는 뮤지컬에 가깝습니다), 여자 주인공이 체코 출신 이민자라는 점(한 명은 미국 이민자, 한 명은 아일랜드 이민자). 이런 공통점을 봤을 때 단순히 재미나 감동이 아닌 순수 예술로서 영화는 이래야 한다라는 저의 가치관이 드러납니다. 영화는 현실을 가공하고 꾸며 즐거움을 주는 것 외에 현 사회를 있는 그대로 보여줄 때 힘을 지닌다. 어둠 속의 댄서는 현실을, 그냥 현실이 아닌 피도 눈물도 없는 잔인하고 비참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음악, 뮤지컬은 주인공 셀마의 유일한 탈출구인데 꿈과 희망을 주는 뮤지컬 때문에 현실은 더욱 참혹하게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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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스는 남여가 경험하는 사랑의 줄타기를 음악을 소재로 현실적으로 표현합니다. 음악으로 시작된 감정의 연결선은 음악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더욱 증폭됩니다. 그 과정 속에 여자를 자신의 방으로 끌어들이려는 남자의 작업, 썸을 타며 오토바이로 드라이브를 가고 거기서 여자가 내뱉는 체코어 등이 보는 이로 하여금 아슬아슬한 감정의 줄타기에 동참하게 만들죠.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습니다. 분명히 경고했습니다.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키스신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가장 아슬아슬 했던 장면은 녹음 중 쉬는 시간에 피아노를 발견한 여자가 피아노를 치며 'the hill'을 부르는 장면입니다. 자신의 이야기죠. 남자와 여자는 감정의 절정에 이르지만 둘은 불 꺼진 빈 방에서 그냥 나옵니다. 여자는 이미 결혼을 했고 남자는 떠나야 하니까요. 영화는 그렇게 현실적인 엔딩을 향해 달려갑니다. 남자는 여자에게 마지막 선물을 주고 자신의 길을 가죠. 키스를 했다면, 여자를 자신의 방으로 초대한 남자의 작업이 먹혀들었다면..오히려 원스는 영화로서가 아니라 음악만 주목받았을 지도 모릅니다. 현실은 영화 속에의 키스처럼, 방으로의 초대처럼 호락호락하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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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긴어게인입니다. 두괄식으로 말하면 저는 비긴어게인에 실망했습니다. 원스에서 상업성 말곤 한발짝도 나가지 못했습니다. 키이라 나이틀리와 마크 러팔로의 역할만 바꾸면 이야기 구조가 원스와 똑같습니다. 독특한 점은 영화 초반 두 사람이 우연히 만나는 과정을 표현한 편집 기법과 키이라 나이틀리의 음악을 듣는 댄이 상상 속에서 프로듀싱을 하는 장면 정도입니다. 그 이후는 뭐 원스를 본 사람 입장에서는 뻔한 전개죠.

하지만 비긴어게인은 어쨌든 재밌는 영화입니다. 음악을 만들어가는 과정, 가족의 화해, 감정의 증폭, 키이라 나이틀리와 애덤 리바인의 노래 등등 재밌는 요소는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마음 한 켠에 실망과 아쉬움이 남는 이유는 존 카니란 감독을 너무 믿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분명히 재미있지만 원스에서 느꼈던 현실감의 반복, 똑같은 구성, 거기에 상업성만 더 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음악이 주는 감동도 원스에 비해 한참 부족합니다. 사실 원스 OST는 개인의 취향이긴 하지만 단 한곡도 놓칠 게 없었지만 비긴어게인에서 남는 곡은 3곡 정도네요.

어쨌든 이제 남은 일은 하나인 것 같습니다. 싱 스트리트가 TV에서 방영되는 일. 저는 평생 원스를 잊을 수 없겠지만 존 카니란 감독에 대해서는 실망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싱스트리트가 남아 있습니다. 이 작품을 본 뒤에 존 카니 감독에 대한 마지막 평가를 저 스스로 내릴 생각입니다. 물론 제가 이 작품을 언제 볼 수 있을지는 알 수가 없네요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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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