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성 그리고 페미니즘

"ㅋㅋㅋ"

초성체. 이젠 아무렇지도 않고 흔히 볼 수 있는, 친근하기 까지한 단어(?). 그런데 어째서 이런 단어(?)가 생겼는지 알고 있는가?

리니지라는 게임이 있다. 흔히 단무지로 불리우는 아저씨들이 많이 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들이 게임하는 모습을 보면 한 손으로는 마우스를 잡고 남은 손으로 키보드를 눌러댄다. 대개는 타자를 치지 못하는 소위 독수리 타법의 구사자 였는데 채팅을 치고자 할 때 자판을 보며 두 손가락으로 더듬더듬 치는 것 보다 모음을 무시하고 자음만 치는 것이 그들에게는 합리적이었으나 직접 피시방에서 그 모습을 보면 그렇게 무식하고 정떨어지는 모양새가 없었다.

한 때 채팅을 즐기면서 나름 개념이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 하나의 룰을 정했다. 당시에는 그러한 행위를 천박 - 소위 말하는 초딩 개념들이 많이 사용했으니 -하다는 인식이 공통적으로 있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초성체 금지라는 전원 합의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어느 순간 당시 약속을 했던 사람들 중에서도 하나둘씩 그런 개념없는 행위를 하는 사람이 늘었다. 나는 크게 불편했다. 어떻게 합의한 사항을 지키지 않는가 라는 생각이 들어 배신감마저 느꼈던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냥 쓰고 싶어서 쓴다는데 왜 태클을 거느냐는 말을 듣고 그 그룹에서 나와버렸다.

지금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보면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지 않다. 피시방을 점령한채 타자를 제대로 치지 못하던 덩치 큰 독수리 타법의 린저씨들이 만들어 낸 저급함이 한국어 세상을 점령해 버렸으니 말이다.

그렇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누구의 잣대를 대도 편리했다는 점이다.

현재 페미니즘들이 말하고 있는 것들을 보면 그러한 모습이 다시금 떠오른다. 임산부 전용석, 생리 휴가, 군가산점, 성희롱, 남성 강간 원죄론, 성상품화, 여성혐오등 여성계에서 불편해요~라고 말하고 있는 것들이 나에게는

독수리 타법의 린저씨에게 편한 초성체였지만 내가 써도 편하다.

즉 가장 불편한 사람이 했어도 나에게 적용되면 편한 것.

으로 생각된다.

이 얘기를 페미니즘 쪽으로 돌려본다면

절실하게 도움이 필요한 여성도 있을 것이며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는 여성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기준을 가장 절실하게 도움이 필요한 여성에 맞춘다면 전체 여성은 편해진다.

현재 페미니스트들의 뿌리는 이런 생각들이 아닐까 하는 우려가 생긴다.

이런 논리가 어떤 문제점을 안고 있는지는 다음 글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빈곤층을 지원하기 위해 가장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을 기준으로 하자.

안전한 군생활을 위해 가장 문제를 일으킨 군인을 기준으로 하자.

등 여러가지 남성 중심적인 사회가 구성원들의 합의를 근거로 효율성을 위해 만들어 놓은 보편적인 기준이 송두리째 무너질 여지가 있다. 예를 들자면 생리통이 정말 심한 여성이 비교적 생리에 영향을 받지 않아 놀러 다니는 여성들의 행태에 의해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고 그러한 이기적인 행태로 인해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할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이미 사회 곳곳에서 목격되었다 증언하고 있는 바이다.

남성인 나는 여성이 어떤 고통을 안고 있는지 정확히 알 방법은 없다. 그래서 이러한 일들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할 여지는 작아진다. 다만 여성계가 자신의 생각과 경험이 다른 남성계와 함께 하고 싶어서, 더욱 사회를 발전시키고 싶어서 자신들의 불만을 말하고 있는 것이라면 전체 사회가 납득할만하고 합리성을 갖춘 보편적인 기준을 내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다시 세상에 가장 어리석은 사람들이 만들어버린 "ㅋㅋㅋ"가 계속 나타날 때 여성계가 내놓을 답은 모순에 빠져 버릴 수 밖에 없을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