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역사적 졸전에서 배우는 '내로남불'의 한계

in #kr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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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로남불은 너무나 유명하고 여기저기서 쓰이는 말이다. 이건 어쩌면 인간본성에 가까울 것이다. 이 표현이 너무 한국 구어체에 들어맞게 찰져서 그렇지, 다른 나라에도 비슷한 표현들이 있을 것이다. 일단 이전에 쓰던 사자성어로는 아전인수가 있을 것이고.
 
 
이 말 자체가 사람들이 이상으로 생각하는 삶의 양태와 현실적인 삶은 사뭇 다르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삶을 바라볼 때는 도덕원칙으로 재단하다가, 그 원칙이 자기 삶으로 틈입하면 나름의 사정을 얘기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내로남불을 외치며 도덕법칙의 규율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들이 언제나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 갭이 있다는 것은 사람들이 현실을 살면서도 이상을 흉내는 내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누군가 그걸 흉내조차 내지 않으려고 할 때, 아예 넘어야 할 선이 없는 것처럼 생각할 때 사람들은 분개한다.
 
 
그 선이 어디쯤 그어져 있는지를 알기는 어렵다. 사실 애매한 경우엔 옹호와 비난도 적당히 갈리곤 한다. 하지만 하나의 장르를 공유하는 이들이 모조리 욕하고 있다면 선을 확실하게 넘은 것이다. ‘해도 해도 너무 한다’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때엔 아무리 내로남불을 외치며 변명하더라도 소용없다.
 
 
일본과 폴란드의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도 그 예시에 들어갈 것이다. 일본 플레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바란다. “너희들은 볼 돌리지 않느냐. 침대축구 해본 적 없느냐. 다음 라운드 진출하기 위해 뭐라도 하지 않느냐.”
 
 
맞다. 다들 그렇게 한다. 하지만 저 정도는 아니다. 그리고 현실의 언론과 군중은 “너희들 중 죄없는 자만 돌로 쳐라”고 하던 예수님이 아니다. 예수님 설득이 통한 그 상황이 예외적이다.
 
 
그 경기엔 몇 가지 선이 있었다. 첫째로, 일본은 지고 있었다. 일본이 이기거나 비기고 있었다면, 그러니까 획득할 수 있는 승점이 3점이나 1점이 있었다면,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그 선택을 이해했을 것이다.
 
 
둘째로, 폴란드가 협조하지 않았다. 역설적인 얘기지만 폴란드라도 사력을 다했다면 일본이 욕을 덜 먹었을 것이다. 생각해보라. 일본이 볼을 돌려도 폴란드 선수들이 파이팅 넘치게 달려들면 그 경기엔 긴장감이 생긴다. 계속 중간에서만 돌리면 오히려 일본의 체력이 더 낭비되기 때문에 가끔은 너무 힘들어서 좀 쉬려고 전방을 향해 슛인 척 공을 버리는 뻥축구를 한다. 그러면 폴란드가 다시 볼을 몰고 나오고 일본이 그것을 뺏으면 스피디하게 역습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볼을 돌린다.
 
 
이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볼을 돌리는 축구의 패턴이다. “한국은 토고전 때 안 했느냐”라고 “다른 나라는 어느 전 때 안 했느냐”고 하는데 보통은 저런 식이었다. 그러니 관중이 물병을 덜 던지게 된다. “어차피 떨어졌는데 1승만 챙기면 됐지 뭐”라고 생각한 폴란드는 일본 선수들에게 십분의 휴식시간을 주면서 욕받이로 내민 것이나 다름없다. 일본은 물병을 던지는 전세계 축구팬들은 원망할 수 없고, 오직 폴란드만을 원망할 수 있다.
 
 
셋째로, 타 경기장의 상황이 그렇게 확정적인 것이 아니었다. 한골차였기 때문에 뜬금포 한 골이라도 터져나왔다면 일본이 탈락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일본은 뭔가가 확실한 상황에서 확고한 전략적 판단을 내리고 그걸 실행에 옮긴 것이 아니다. 그저 상황이 감당이 안 된다 여기고 모든 걸 운에 맡긴 것에 불과하다.
 
 
넷째로, 상대가 폴란드였다. 폴란드라고 무시당할 팀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독일은 아니다. 탑시드팀이었다곤 하지만 일본이 꺾었더라도 한국-독일전만큼 엄청난 이변으로 평가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제 이 상황을 모두 종합해보자.
 
 
‘상대는 폴란드에 불과했다. 일본이 엄청나게 떨어야 하는 팀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일본은 0-1로 지는 상황에서, 승점 1이나 3을 확보하는 상황도 아닌 지는 상황에서 볼을 돌렸다. 옆 경기장 상황을 보고 내린 전략적 결정이라곤 하지만 그 경기장 상황이 완전히 결정된 것도 아니었다. 뜬금포라도 하나 나오면 탈락이었다. 그런데도 눈앞에 있는 상대에게 덤벼서 자기 발로 다음 라운드로 진출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서로 눈치만 보고 볼을 돌리며 모든 걸 운에 맡겼다.’
 
 
이렇게 적으면 당연히 감정의 결론은 “저딴 팀이 무슨 월드컵 16강에 갈 자격이 있냐. 갔다는 게 얼마나 웃기냐. 뭐 룰이 이러냐. 저놈의 페어플레이 규정이란 게 왜 가장 페어플레이 못한 팀에게 유리하게 작동했냐”가 된다.
 
 
‘해도 해도 너무 한다’ 상황이다. 내로남불이라고 맞받아칠 게 아니다. 왜냐하면 해도 해도 너무 했기 때문이다.
 
 
드루킹으로 국정원 댓글에 비벼보려고 시도하는 이들, 애호박 찡긋으로 유아인을 여혐종자 만들려는 이들이 숙지해야 할 인간사의 흐름이다. 인간은 피드백에 약해서 집단적으로 모여 침을 튀기며 떠들면 또 그럴싸해 보인다. 자기들끼리 선을 넘어 아예 다른 선을 만들어 버린다.
 
 
하지만 그 새로운 선에 입각한 행동이 세상 밖으로 나왔을 때의 결말은 분명하다. 사이비종교나 합숙소에서나 가능했던 그 집단극화가 SNS를 통해 너무 쉽게 실현되는 세계다.
 
 
‘대중 그 자체’인 사람은 없다. 사람에겐 각자의 신념과 철학이 있고, 지향이 있다. 그래서 누구나 어느 영역에선 다수자이지만 다른 영역에선 소수자다. 소수파의 이념을 다수파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분투하는 삶도 나쁘지 않다. 심지어 아름다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라면, 본인이 어디에 서 있는지는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어느 우물에서 물을 마시고 있고 어느 골목길에 발을 걸치고 있는지는 알아야 한다. 막연하게 본인이 바다에 있다고, 도시에 있다고 착각하다 보면 그 영역 바깥만 나오면 망상증자 취급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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