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혁명. 영화 1987
영화 1987은 6월 항쟁에 승리한 모든 사람들을 위한 뜨겁고 슬픈 영화이다.
유명 배우들이 많이 출연했고 그 배우들이 6월 항쟁의 열사들을 연기했다.
영화가 좋아 누적관객수를 찾아보니 아직 400만명이다.
충분히 1000만 넘길만한 영화인데 생각보다 적어서 아쉽다. 더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
그와중이 김태리 배우는 진짜 예쁘....(에이 속물)
사실 나는 정치나 사회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2016년 촛불혁명이 있었고 나는 역시 잘 모르는 사람중에 한명이었다.
계속되는 언론보도에 의해 조금씩 관심을 갖게되었고 언제부터인가 촛불집회에 참여했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니까 나도 그래야만 할것 같았을까?
예술가로써의 역할이라 생각했던걸까?
처음엔 그냥 몇시간을 서있다 왔다. 집회 대열 속에 서있는것 만으로도 어떤 도움?을 주는것이라 생각했다.
두번째 세번째 집회가 지나면서 어떤 분노나 슬픔들을 느꼈던거같고.
그 후로는 촛불집회에 참여하지 않는 주변 사람들에게 꼭 집회에 참여하라고 얘기했다.
사실 집회에 참여하지않는 주변사람들을 미워했던거 같기도하다.
나는 진짜 혁명을 원했나?
그랬다. 혁명을 원했다.
그런데 2016촛불집회가 안전하지 않았다면?
1987년 6월항쟁과 같이 군인과 경찰들의 폭력진압이 있었다면 나는 그곳에 참여했을까?
잘 모르겠다. 잘 모르는 이유는 내가 겁쟁이여서인가?
나는 혁명을 외쳤지만 사실 여전히 나는 관심이 없고 잘 모르는 사람인거같다. 부끄럽다.
6월 민주항쟁
1980년대 중반에는 학생들과 야당 정치인들, 그리고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한층 높아졌다. 특히 국민이 대통령을 직접 뽑는 ‘대통령 직선제’는 가장 중요한 요구 사항이었다. 전두환 정부는 처음에는 직선제로 바꾸라는 여론을 무시했지만, 국민들의 요구가 거세지자 어쩔 수 없이 헌법 개정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
당시 연세대학교 학생이었던 이한열 군이 시위를 벌이다 최루탄에 맞아 죽는 사건이 발생하자, 분노한 시민들에 의해 6월 민주 항쟁의 열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그런데 1987년 4월 13일에 갑자기 ‘호헌 선언’이 발표되었다. 호헌이란 헌법을 보호하거나 지킨다는 뜻이다. 즉, 이전의 헌법대로 대통령을 간접 선거로 뽑겠다는 선언이었다. 전두환 정부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헌법을 개정할 시간이 부족하고, 정치인들이 서로 뜻을 모으지 못했다는 이유를 들어 직선제 요구를 거부했다. 그러고는 6월에 집권당인 민주정의당의 대통령 후보로 노태우를 뽑았다.
이에 분노한 시민들은 ‘호헌 철폐’와 ‘독재 타도’ 등을 외치며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에 들어갔다. 그해 초에 고문을 받다 숨진 박종철 사건과 시위 도중에 최루탄을 맞아 숨진 이한열 사건으로 인해 시민들의 분노는 더욱 커졌다.
1987년 6월 10일 전국 곳곳에서 거의 동시에 시작된 시위는 20일간 매일 계속되었다. 처음에는 학생들이 중심이 되었으나 차츰 일반 시민들의 수가 늘어나 국민 운동으로 발전해 갔다. 회사원들도 점심 시간이나 업무를 마친 뒤 넥타이를 맨 채 시위에 참여해 ‘넥타이 부대’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결국 전두환 정부는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에 굴복해 대통령 직접 선거와 국민의 기본권 보장, 구속되거나 연금된 정치 인사들의 석방 등을 내용으로 하는 6 · 29 민주화 선언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헌법이 개정되었고, 국민들은 16년 만에 대통령을 자신의 손으로 뽑을 수 있게 되었다.
출처-[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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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영화 였습니다. 담담한 슬픔 ... 보팅 팔로우 합니다.
그쵸.. 영화 너무 좋죠..!!!!^^
보팅 팔로우 감사해요. 저도 갑니돠~
1987 영화가 화제네요. 궁금하긴 한데 영화관을 못가서 볼 수가 없어요.ㅠㅅㅠ
곰님! 이건 꼭 봐야해요ㅋㅋ큐ㅠ
그러고보니 영화본지 오래되었네요.. 가슴 아픈 역사지만 꼭 돌이켜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이런 취지의 좋은 영화가 막힘없이 나올 수 있는 시대가 되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