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 노벨상 후보 고은 시인...도덕성에 대한 단상

in #kr7 years ago (edited)

고은 시인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두 번.

#1

한 번은 진행하던 프로젝트에 글을 써달라 부탁하기 위해서였어요.
모 호텔 라운지에서 뵈었습니다. 모자까지 쓰고 잘 차려입은, 딱 봐도 까다로와보이는 신사라는 느낌이었습니다. 거절 당했어요.

"솔직히 보수가 너무 적어요. 명분이나 인연으로만 일을 부탁한다고 될 것이 아닙니다."

거절 당했지만 솔직히 담당하는 입장에서 오히려 깔끔하고 편했습니다. 괜한 시선이나 체면 때문에 딱부러지는 거절은 못하고 계속 질질끄는 것이 오히려 피곤한 일이니까요.

"저희가 무례했습니다. 다음에 정말 선생님이 만족하실만한 조건으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라고 말씀드렸더니 저를 똑바로 보시며
"젊은 사람이 말을 참 예쁘게 하네."라고 말씀하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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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번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한국의 '고은'이 유력하니 수상자로 확정되면 인터뷰를 준비해줄 수 있겠느냐?"

지난 가을 스웨덴에서 친구가 왔드랬습니다. 한국에 대한 관심이 많아 여러매체에 왕왕 한국에 대한 기사를 쓰는 친한파 친구에요. 친구와 함께 있는데 스웨덴의 국영방송 Svt(스웨덴의 KBS)의 기자에게 연락이 왔어요.

"너 고은 알아?"
"한국 사람이면 다 알지. 교과서에 나오는 시를 쓴 분이니까. 근데 그 분 노벨상 후보로 거론된거 십 년도 넘어."

방송국 친구도 그 사실을 모르지는 않을 터, 정말 유력하냐 물었습니다.

"지난해에는 비교적 젊은 여성 르포작가가 수상했어. 분석가들에 따르면 올해는 나이 많은 남성, 그리고 시 같은 순수문학 장르가 되지 않을까. 거기다 문학상 분야는 특히나 유럽 작가 중심으로 주어진다는 비난이 있었으니 비유럽 출신일꺼야. 그래서 고은이 가장 유력하지 않겠냐는 거지. 하루키도 있긴 하지만."

이번에도 빗나갔습니다만,
고은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인인 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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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어로 출판된 고은의 '만인보(Maninbo)'.
고은의 시집은 14개 언어권에서 33권이 번역됐습니다.

사실 고은 시인의 시를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낙옆이 흩어진 날
모르는 여자가 아름다와요

하는 노래가 고은의 시에 붙인 곡이라는 것만 알았지요.

모르는 여자? 남자들이란.
하면서 코웃음을 쳤던 기억만 있어요.

그러다 지난 해 고은 시인을 뵙고 직접 읊는 시를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제가 근 10년 만난 사람 중에 가장 똑똑한 사람을 꼽으라면 아마 라스 다니엘손 전임 주한 스웨덴 대사일 것입니다. 고국 스웨덴에 대한 애정과 사민주의에 대한 확신,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지혜와 거리두기...뵐 때마다 감탄하며 참 많이 배웠습니다. 4년간 주한 스웨덴 대사로 계시다 독일 대사로 부임하며 한국을 떠나셨는데 송별 파티에 고은 시인을 초대하셨더라구요.

다니엘손 대사는 매일 아침 고은의 시집을 펼쳐 나오는 시를 하나 읽으며 하루를 시작했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에 대해 알려면 누구의 작품을 읽어야 하느냐고 전임 대사에게 물었더니 주저 없이 고은 시인을 꼽았다고 했습니다.

"한국에 대해 알고 싶다면 고은의 시를 읽어라"



한국에 대해 알기위해 고은의 시를 읽는다?
우리에게는 서정적인 시가 주로 알려져 있지만, 고은의 시집을 처음부터 죽 읽다 보니 우리의 역사와, 고단한 삶의 농담(濃淡)이 보이데요. 노벨문학상 수장작을 보면 영미유럽권이 아닌 경우 대부분 역사나 시대정신을 반영한 작품에 우호적이 었습니다. 거기다 일단은 해외에 알려져야 하는데 고은 시인의 작품은 번역도 많이 되었고 여러차례 해외 리사이틀을 통해 소개도 되고 해서 아마 노벨상 후보로 계속 거론 되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어렸을 적 가난에 주려 하늘의 별이 밥이었으면 했다. 별을 노래하는 시인이 되고 나서는 별이 밥인 줄 알았던 시절이 부끄러워 숨겨왔었다."

가슴 아픈 고백마저 시인의 언어로 들으니 아름다웠습니다. 역시 시인은 시인이구나 싶었습니다. 십 대에는 무슨 까닭인지 폐결핵에 걸렸으면 하고 바랐고, 있지도 않은 누이를 있는 척 그리워하기도 했다 했습니다. 환상과 현실의 경계가 애매한 삶을 살았다고 했지요.

일제 강점기 시절 이야기가 재미있었습니다. 일본 소학교에 다닐 때 선생님이 아침마다 일본을 찬양하는 말을 돌아가며 시켰다고 했습니다. 어느 날은 꿈을 묻기에 “나는 천황이 되겠다”고 답해 쫓겨났다고 했습니다. 그 기억으로 지은 시가 <아베 교장>입니다.

아베 교장

아베 쓰도무 교장
둥그런 안경에 고초당초 같은 매서운 사람입니다
구두 껍데기 오려 낸
슬리퍼 딱딱 소리 내어 복도를 걸어오면
각 교실마다 쥐죽어버리는 사람입니다
2학년 때 수신 시간에
장차 너희들 뭐가 될래 물었습니다
아이들은
대일본제국 육군 대장이 되겠습니다
해군 대장이 되겠습니다
야마모또 이소로꾸 각하가 되겠습니다
간호부가 되겠습니다
비행기 공장 직공이 되어
비행기 만들어
미영귀축을 이기겠습니다 할 때
아베 교장이 나더러 대답해 보라 했습니다
나는 벌떡 일어나서
천황 폐하가 되겠습니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청천벽력이 떨어졌습니다.
너는 만세 일계 천황 폐하를
황공하옵게도 모독했다 네놈은 당장 퇴학이다
이 말에 나는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그러나 담임 선생님이 빌고
아버지가 새 옷 갈아 입고 가서 빌고 빌어서
간신히 퇴학은 면한 대신
몇 달 동안 학교 실습지 썩은 보릿단 헤쳐
쓸 만한 보리 가려내는 벌을 받았습니다
날마다 나는 썩은 냄새 속에 갇혀 있었습니다
땡볕 아래서나 빗속에서나 나는 거기서
이 세상에서 내가 혼자임을 깨달았습니다
그 석 달 벌 마친 뒤 수신시간에
아베 교장은 이긴다 이긴다 이긴다고 말했습니다
대일본제국이 이겨
장차 너희들 반도인은 만주와 중국 가서
높고 높은 벼슬 한다고 말했습니다
B-29가 나타났습니다 그 은빛 4발 비행기가 왔습니다
교장은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저것이 귀축이다 저것이 적이라고 겁도 없이 말했습니다
그러나 아베 교장의 어깨에는 힘이 없었습니다
큰소리가 작아지며 끝내는 혼자의 넋두리였습니다
그 뒤 8·15가 왔습니다. 그는 울며 떠났습니다

1945년의 해방은 시인에게 정치적인 해방보다 모국어의 해방이라고 했습니다. ‘파도’라고 말하면 파도 소리가 들린다는 고은 시인은 언어 자체가 원자처럼 우리 안에 녹아 존재를 형성한다고 했습니다. 언어가 없으면 존재가 사라지는 것, 언어를 찾았으니 존재를 찾은 것이지요.

다니엘손 대사는 고은 시인에게 한국에 머무는 마지막 날 읽을 시를 골라달라고 했습니다.

“나도 내 시를 다 기억 못 해서 뭘 꼽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저어하던 시인은 와인이 몇 차례 돌고 나자 살짜기 <어떤 기쁨>이란 시를 골라주셨습니다.

어떤 시인지 궁금하시져? 검색해서 보세요. 그것보다 할 말이 있거든요.

P.S.
피해자가 한국사회에서
본인이 피해사실을 털어놓으므로 겪게될 상황을 감당하면서까지 공개를 했다면
그것은 일정부분 사실일 뿐더러 동료와 후배들에게 더 나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어렵게 용기를 낸 경우가 많다.

고은 시인은 최근 한겨레 인터뷰를 통해

"술 먹고 격려도 하느라 손목도 잡고 했던 것 같다. 그럴 의도는 없었지만 오늘날에 비추어 희롱으로 규정된다면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뉘우친다"__ 했고,

안태근 전 검사는

"오래전 일이고 문상 전에 술을 마신 상태라 기억이 없지만, 보도를 통해 당시 상황을 접했고 그런 일이 있었다면 진심으로 사과 드린다”

사과에 왜 가정법이 들어가는 거지?

'만약' 희롱으로 규정된다면 잘못이고 아니면 아니다?
그런 일이 기억에는 없는데 '만약' 있었다면 사과 드린다?
의도도 없고 기억에도 없는데 왜 사과를 하지?

이것은 대중을 향한 유감의 제스쳐일 뿐 사과가 아니다.

피해자 대부분은 이름만 들어도, 지나가다 비슷한 사람만 봐도 심장이 덜컹하는데.

그럼에도 고민이 되는 지점은 능력이 뛰어나면 도덕성에 흠결이 있어도 괜찮은가 이다.

상당히 많은 경우 능력이 뛰어난 것은 발탁의 이유가 되지만
도덕성이 뛰어난 것이 발탁의 이유가 되는 경우는 드물며
도덕성이 부족한 것이 그만큼의 결격사유가 되지도 않는다.

스웨덴 사민당의 최연소 부총리였던 모나 살린은 법인카드로 초코렛을 산 것이 드러나 사퇴했고, 한 변호사는 승소 선물로 100달러 상당의 공연 티켓을 받았다가 자격이 정지됐다.

내가 경험한 한국과 북유럽의 차이 중 하나인데,
도덕성과 재능을 절대 가치로 보자면 우리는 무엇이 우위인 사회에서 살고 있는 걸까? 또 살아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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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을 이유로 도덕성을 무시하는 것은, 그에 의해 밀려날 다른 실력있는 사람을 무시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맞아요. 도덕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기 보다 뛰어난 사람도 기용할텐데 말이에요. 도덕성이 부족한데 실력이 뛰어나면 그야말로 큰 문제이자 공동체의 재앙인것 같습니다.

기가 찹니다.

이런 노력을 통해 조금씩 나아질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었지만 이제는 문제가 된다면 사과하겠다는 뜻인데, 타인과 사회의 시선에 의한 사과이지, 자신이 깨달아서 반성하는 의미의 사과는 아닌 것 같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합니다. 하지만 잘못을 뉘우치고 고치는 사람이 발전해나가는 사람이지요. 그런 면에서 고은 시인 말년의 행보는 안타깝습니다.

맞아요. 누구나 잘못을 하지만 잘못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응하느냐가 그 사람의 인품을 보여주는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