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차움이 원하는 블록체인은 이런 모습이다
암호학자 데이비드 차움. 사진=김병철
암호학자 데이비드 차움은 비트코인을 설명하면서 빠지지 않는 주요 인물 중 한 명이다. 컴퓨터 공학자이기도 한 그는 1994년 최초의 전자화폐인 ‘e캐시’를 만들어 비트코인의 탄생에 영향을 줬다. 흔히 `암호화폐의 아버지’로 불린다.
오는 20일 싱가포르 컨센서스에서 자신의 블록체인 프로젝트 ‘믹스체인(MixxChain)’을 발표하는 그가 싱가포르를 가는 길에 잠시 서울을 들렀다. 코인데스크코리아는 지난 13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서 열린 크립토서울 밋업에서 그를 만났다.
프라이버시는 민주주의의 필수조건
차움은 블록체인에 대한 이야기에 앞서 자신이 암호학에 뛰어든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그를 움직인 건 숫자와 기술이 아니라 프라이버시와 민주주의였다.
1980년대 초반 차움은 미국 UC버클리의 대학원생이었다. 인터넷이 아닌 책에서 정보를 얻던 시절. 그는 학교 도서관에서 미국 정부가 선거를 통해 당선된 칠레 대통령을 어떻게 끌어내렸는지에 대해 읽었다.
미국 정부가 칠레를 장악할 수 있었던 비결은 감시와 도청이었다. 이들은 칠레 정부에서 이뤄진 전화 통화 내역을 기록해 워싱턴D.C.로 전송했다. 말 그대로 정보는 권력이었다.
그가 프라이버시의 중요성을 느끼고 암호학에 매진하게 만든 사례는 미국 안에서도 많았다. 미국 정부는 특정 전화번호의 송수신 기록을 모두 기록하는 ‘펜 레지스터(Pen Register)’라는 기기를 운영했다. 정부 기관이 요청하면 우편 집배원이 특정인의 우편 내역을 모두 기록해 제공하는 ‘메일 커버(Mail Cover)’도 합법이다.
차움은 “커뮤니케이션과 모금(Funding)의 프라이버시가 민주주의에 필수적이라는 것이 나의 근본적인 신념이다”라고 강조했다. 정부 등이 개인의 통신 내역이나 송금을 들여다보는 건 민주주의를 해친다는 뜻이다.그는 미국 정부의 압박으로 비자, 마스터카드, 페이팔 등을 통한 위키리크스 기부가 불가능한 것을 사례로 꼽았다. 이런 그의 생각과 기술은 곧 사이퍼펑크(Cypherpunk) 문화로 이어지기도 했다.
최초의 전자화폐 e캐시 발명
차움은 1981년 ‘추적이 불가능한 이메일, 수신 주소, 디지털 가명’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믹스(Mix) 네트워크라고 불리는 이 암호 기술은 이후 많은 분야에 활용됐다. 1982년엔 전자 화폐와 ‘블라인드 서명’에 대한 논문을 썼고, 국제암호학회 설립을 주도했다.
이런 활동에 이어 그는 ‘디지캐시(Digi Cash)’라는 회사를 1994년 창업하고 e캐시를 발명했다.(블록체인 기반은 아니다.) 그는 “숫자가 돈이 될 수 있다는 게 나의 아이디어였다”며 “사토시 나카모토와 마찬가지로 나도 ‘사람들이 관심 갖는 가장 매력적인 애플리케이션은 돈’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1990년대 중반 디지캐시는 에어드롭을 하기도 했다. 최근 블록체인 기반의 암호화폐 시장에서, 기존 암호화폐 보유자에게 새 암호화폐를 나눠주는 행위를 칭하는 에어드롭의 역사는 20년도 더 된 것이었다.
디지캐시는 1996년 유럽에서 가장 큰 은행인 도이치뱅크와 파트너 협약을 맺었다. 비자와도 e캐시 활용에 대해 여러 논의가 오갔다. 하지만 이제 막 인터넷이 대중화되는 시점에 전자화폐까지 받아들이는 건 너무 일러서였을까. 디지캐시는 고객 확장에 실패해 1998년 파산했고 차움은 다음해 회사를 떠났다.
암호학자 데이비드 차움이 지난 9월13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서 열린 크립토서울 밋업에서 블록체인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사진=김병철
믹스체인으로 그리는 블록체인의 미래
암호학과 민주주의 그리고 돈을 잇는 차움의 꿈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는 프라이버시가 강조된 프로토콜인 믹스체인으로 블록체인의 새로운 장을 열겠다는 계획이다.
그는 현재 블록체인이 메인스트림(주류)으로 가기 위해선 결제와 메시지 전송 속도를 10초 이내로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블록체인 커뮤니티의 많은 사람들이 몇년째 샤딩, 라이트닝을 말하고 있지만 구현하지는 못했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그는 확장성 면에서도 10만 TPS(Transaction Per Second)는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블록체인이 메인스트림으로 가기 위해선 아래 네가지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1. 10초 이내의 결제, 메시지 전송 속도2. 10만 TPS 수준의 트랜잭션3. 완벽한 프라이버시a) IP주소, MAC 주소가 노출되지 않는 결제b) 또 다른 결제와 연결되지 않은 결제4. 암호 해독, 퀀텀 컴퓨팅에 대한 저항성
암호학자 데이비드 차움의 발표자료. 사진=김현기
아래는 차움과의 일문일답이다.
-블록체인이 메인스트림으로 가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나는 블록체인이 사라지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블록체인이 지닌 엄청난 잠재력을 발휘하려면 반드시 메인스트림에 진출해야 한다. 지금 집중되어 있는 블록체인에 대한 관심을 끌어모아서 많은 소비자가 쉽게 사용하도록 만든다면 무한한 기회가 열릴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꿈꾸는 블록체인은 뜻대로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다.”
-확장성과 속도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의 블록체인 기술은 광범위한 소비자 결제 시스템에 필요한 확장성과 성능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왜 10만 TPS는 나와야 하는 건가?
“10만 TPS는 평균 속도다. 최대 용량을 만족시켜줘야 소비자가 사용한다. 무엇보다 결제, 메시지 전송 속도가 (기존) 스마트폰 앱 정도는 나와줘야 한다.”
-(블록체인을 활용한) 투표 시스템에도 관심을 갖고 있나?
그렇다. 내 웹사이트에 있는 논문을 보면 알겠지만 그동안 암호학을 활용한 투표 시스템도 연구해 왔다. 투표는 블록체인 거버넌스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ICO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지금까지 킬러앱(Killer App)은 아마도 ICO였을 것이다. 자금을 창의적으로 모았다는 점에 대해선 인정한다. 충분히 매력적이다. 하지만 현재 벌어진 상황에 대해서 그다지 좋게 보지는 않는다. 다음 킬러앱은 분명 소비자 결제 서비스와 메시지 전송(Messaging)이 될 것이다.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