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레이트 뷰티 - 한단지몽이 아닌 진짜 아름다움을 향해

in #kr7 years ago

< 그레이트 뷰티 >

                                    -파올로 소렌티노-
  • 그레이트 뷰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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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모든 것을 다 가져본 노인이 있다. 그는 젊은 시절 열심히 일한 대가와 타고난 운을 바탕으로 일장춘몽이 아닌 영원한 부귀를 보장 받는 대박의 삶을 지탱하고 있는 남자다. 이제 그의 삶에는 단 한 개의 미션만이 남았다. 죽음.

젭은 아름다운 웅장함의 도시 로마의 상위 1%의 남자다. 누릴 것 다 누리고 원하는 건 다 호사한 가장 부러운 행운아 중 하나이다.

영화는 초반부터 그런 젭의 위치를 확고히 알려주기 위해 상위1%들의 초대형 파티 장면으로 시작한다. 리드미컬한 음악이 흐르고 가수는 웃통을 훌렁 벗고 춤을 춘다. 그 아래로 다 똑같아 보이는 인간 군상들이 한 손에는 와인을 들고 눈을 감으며 몸을 흔든다. 춤과 음악을 즐기지 못하는 이들은 다른 풍경을 보인다. 그 속에서 자기만의 수완으로 사업을 하려는 인물도 있고 여자를 갖기 위해 군침을 흘리며 더러운 단어를 뱉는 남자도 있다. 또 부가 아닌 지식을 자랑하는 허세적인 군상도 보인다. 이런 화려한 모습들은 한 남자를 서서히 클로즈업 하면서 뭔가 초라한 느낌을 들게 만든다.

영화의 화자이자 주인공인 갑부 젭의 모습인데, 젭은 화면 중간에 바스트 샷으로 잡히며 점점 클로즈업 된다. 처음 그의 모습은 굉장히 여유롭고 모든 것을 가진 왕의 느낌마저 물씬 풍긴다. 하지만 이 쇼트는 머지않아 단 두 개의 장면으로인해 반전처럼 그의 고독감이 부각된다. 젭을 위에서 거꾸로 찍어 대는 쇼트와 파티를 누리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슬로우로 담아내는 쇼트가 그것이다. 그 장면에서 대부분의 관객은 이 길었던 파티 장면을 왜 그렇게 화려하면서도 질척이게 담아냈는가 알 수 있게 된다. 또 이제부터 감독이 하려는 말의 의도를 대강 눈치 챌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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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레이트 뷰티’는 우리가 본 일반적인 영화의 화법과는 매우 다르다. 서사가 뚜렷하게 있는 것도 아니고 이야기의 핵심인 갈등이나 사건이 두드러지는 것도 결코 아니다. 이 영화는 한 편의 시를 보는 것 같다. 멈춰진 장면들, 반복되는 젭의 표정, 알 수 없는 이야기들. 막상 처음 보면 이런 것들 때문에 굉장히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아니, 처음이 아니라 취향에 맞지 않으면 몇 번을 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이 영화는 영화를 보는 목적인 그저 재미를 위한 것에 있거나 시간을 때울 수단에 있는 사람, 혹은 영화는 무조건 화끈하고 통쾌해야 해, 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보지 말 것을 권한다.

영화를 소설책 한 권처럼 생각하는 사람이거나 뭔가를 느끼고 싶은 사람, 그리고 아름다운 장면들을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추천한다. 또 페데리코 펠리니와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라는 영화 감독들의 이름을 들어 봤거나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권하고 싶다. 다르지만 분명 영향을 받은 부분이 있음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여튼 이 영화는 앞선 제목에서 말한 것처럼 부귀를 한 순간이 아닌 평생 누린 남자가 느끼고 깨닫는 위대한 아름다움이란 어떤 것일까에 대한 내면의 여행기라고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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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단지몽이 아닌 아름다움을 향한 여행

부귀의 허망에 대해 말하고 싶은 이야기꾼들은 많다. 그리고 대부분 작가들은 사실, 그들도 한 번도 경험해 본 적도 없으면서 부귀영화는 허무할 뿐이라는 결론을 너무 쉽게 내린다. 한탕주의를 비꼰 서사를 사용하거나 모든 것을 가졌으나 가장 중요한 사랑을 잃는다는 손쉬운 설정을 사용 하는 식으로 말이다. 물론 부의 허무함에 대해서는 누구나 생각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찍어내는 복사품처럼 늘 비슷한 형태의 이야기와 결말들만 만들어 낸다면 우리는 꼭 그 이야기를 봐야 하는가에 대한 당위성을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레이트 뷰티는 한단지몽의 서사를 사용했으나 표현하는 방식과 말하고자 하는 방식이 매우 구체적이고 개성 있다. 적어도 볼 필요와 이유는 있다는 말이다.

감독은 부귀의 호사를 비꼬고 싶은 수단으로 아름다움을 설정했다. 미와 부에 대한 비유는 그리 낯선 형태는 아니다. 이미 많은 감독들과 작가들이 사용해 왔던 조금은 식상한 소재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레이트 뷰티는 표현 방식에서 훨씬 더 대담하고 독창적인 장면들을 선보인다. 게다가 끔찍하게도 솔직하다.

아름다운 로마의 콜로세움을 등지고 있는 값비싼 고급 빌라에 살고 있는 젭은 이제 그 위대한 로마 건축물에 대한 경외 같은 건 갖고 있지 않다. 그에게는 그것이 그저 무너져 내린 오래된 벽으로 만든 건물일 뿐이다. 오히려 성대한 파티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질질 끌려가는 강아지를 보고 깔깔 웃는 수도원의 아이들의 모습과 맑은 하늘을 따라 이동하는 철새의 모습이 더 아름답다고 느껴진다.

또 그는 아름다운 예술에 대해서도 고개를 갸우뚱 거린다. 한 행위 예술가가 나체의 모습으로 있는 힘껏 웅장한 건물의 벽에 머리를 박는다. 그녀는 박는 순간 피를 흘리며 괴로워한다. 하지만 그것을 보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 둘씩 박수를 치며 그녀의 행위에 경의를 보낸다. 젭은 자신의 잡지사의 인터뷰 목적으로 그녀를 밤에 찾아간다. 그곳에서 그녀는 탈리아란 개념에 대해 말하며 젭에게 자신의 예술 방식에 대해 아리송하게 말한다. 하지만 젭은 그녀의 아리송한 말에 전혀 공감하지 않고 비판적이고 현실적으로 묻는다. 예술가라고 설명하지 말고 그 행위에 대한 정확한 의미를 말해 주라고. 그것을 적어 가는 게 자신의 임무라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젭에게 집착이 심하다고 말하며 자세한 말을 거절한다.

비슷한 장면은 후반에도 나온다. 귀족 파티에 한 아이는 그저 아이들과 수다를 떨고 놀고 싶을 뿐이다. 하지만 아이의 부모는 그녀를 어린 예술가라며 자랑하고 귀족들에게 그 예술을 선보이게 한다. 넓은 흰 도화지를 세워놓고 아이에게 페인트를 준다. 아이는 이미 어른들의 강요에 의해 분노에 차있다. 그 분노를 도화지에 미친 듯이 쏟아낼 뿐이다. 도화지는 점점 색색의 페인트로 아무 의미 없게 채워지고 돈 많은 갑부들은 아이의 아버지가 마련해 놓은 통에 화답의 대가로 돈을 지불한다. 장면이 끝나면 젭과 그의 여자 친구는 여자가 수백만을 번다는 대화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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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또 심미적으로 아름다운 장면과 아름다움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들을 한 화면에 담기도 한다.
노랗고 아름다운 기린이 나오는 장면은 마술사에 의해서 고개를 돌리는 순간 눈앞에서 사라져 버린다. 젭이 어떻게 그러냐고 반문하자 마술사는 그저 다 눈 속임일 뿐이라고 속지 말라고 충고한다. 영화가 말하고 싶은 말은 이 한 대사에 함축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비슷한 대사는 영화 내내 나온다.

넓은 바다를 늘 바라보고 있던 젭은 그 바다가 진정한 아름다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바다는 자신의 과거의 어떤 기억과도 연관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천장을 보며 꿈꾸던 바다의 모습은 한 순간에 인간을 삼켜버리는 괴물이 되기도 한다. 한 여객선이 비스듬히 물에 잠기며 수많은 사람을 익사시켰기 때문이다. 이 장면은 2년전 있었던 실제의 사건이기도 한데, 콩코르디아호 침몰사건이다.

또 감독은 겉만 번지르르한 비뚤어진 진보에 대해서도 날렵하게 비난한다. 젭은 한때 자신의 소설책을 냈던 작가이기도 하다. 그게 벌써 몇십년 전 이야기이며 영화 안에서는 젭과 비슷하게 작가 생활을 하고 있는 상류층의 여자 엘리트가 있다. 그녀는 젭에게 당신이 자꾸 허무해 지는 건 좋은 일들을 안 하고 글을 안 쓰는 무능자라서 그런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이 말에 발끈한 젭은 카운터 펀지를 구석에서 몰아치듯 한방에 그녀를 넉다운 시킨다. 그녀는 어떤 진보단체의 회장직을 맡고 있기도 했었는데, 그녀가 낸 책은 대부분 그곳에서 출판한 것이며 그곳을 통해 수입을 낸 것이기도 하다. 젭은 그런 그녀에게 당신이 진정 그런 맘을 갖고 있다면 지금 이렇게 맘 편하게 누릴 것 다 누리고 살고 있는 건 어페가 아니냐며 따진다. 여자는 젭의 말에 아무 대꾸도 없이 떠난다.

영화에서 아름다운 순수에 관한 이미지들도 몇 개 있다. 그 중 중간에 젭이 사랑하게 되는 친구의 딸인 라모나. 그녀는 몸을 파는 여자로 젭이 데리고 다니는 파티에 어울리는 신분은 아니다. 그래서 젭은 다른 동료들로부터 놀림과 야유를 받기도 하지만 라모나는 솔직하게 자신의 직업을 이야기하고 거리낌없이 노출을 하기도 한다. 가식적인 젭 주변의 삶과는 너무 다른 인물이다.

또 젭은 영화 내내 자신의 과거와 싸운다. 싸운다는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젭은 첫사랑의 시절을 떠올리며 만족해하기도 하고 괴로워 하기도 한다. 이것은 첫사랑 때 느꼈던, 그러니까 아무것도 갖지 않았을 때 느꼈던 순수한 마음에 대한 동경이다. 즉, 그 시절의 그 마음과 상황 모든 것이 젭에겐 진정한 아름다움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영화는 이 외에도 허울로만 아름다운 겉의 것과 초라하지만 깊은 진정한 아름다움에 대해 비교하듯 화면으로 조용히 보여준다. 하지만 그는 끝내 어떤 결론에 이르고 뭔가를 깨닫는 것처럼 보이며, 자신의 첫사랑 회상을 다시 한다. 이는 진정한 아름다움에 대한 고찰이자 여행 그리고 성장기라고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