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유연화'와 '유연한 노동환경'에 관한 잠깐의 고찰
안녕, 스티밋! 오랜만이야. 무더운 여름날, 잘 지내고 있었니?
얼마 전 먼지들의 모임에서 파인텍 노동자들의 굴뚝 농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됐어. 우리 팀원 중 한 명이 <75m 하늘집에 보내는 손편지 프로젝트, 마음은 굴뚝같지만> 에 참여 중이거든. 눈이 오는 한겨울에도, 이렇게 뜨거운 여름날에도 높고 좁은 굴뚝 위에서 먹고 자며 투쟁하는 분들이 계셔서 마음이 무거워.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렇게 오랫동안 투쟁해야 할 만큼 중요한 대의란 무엇일까' 궁금한 마음도 들었어.
이 글을 쓰고 있는 먼지, @nonmooner 는 지난 6월에 마지막 수업을 듣고, 박사 코스웍을 모두 마쳤어. 마지막 수업에서는 마뉴엘 카스텔의 책 『네트워크 사회의 도래』를 읽고, 1970년대 이래로 자본이 재구조화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정보자본주의에 대해 토론을 했지. 이 수업 내내 '노동 유연화'에 대한 이런저런 말들이 오갔는데, 한 수강생이 이렇게 말했어.
"노동이 유연화된 나라일수록 더 잘 산다는 통계가 있어요. 그러니 직장에서 해고되면 시위를 할 것이 아니라, 빨리 다른 직장을 찾아야 합니다. 물론 사회적 안전망은 있어야겠죠."
그 말을 듣고 있던 다른 수강생들은 대체로 '벙찐' 얼굴이 되었어. 하지만 궁금해졌지. 왜 사람들은 직장에서 해고된 후에 얼른 다른 직장을 구하기보다는 몇 달, 몇 년을 굴뚝 위에서, 거리의 천막 안에서, 아찔한 크레인 위에서 싸우는 것일까? '노동유연화'는 노동자가 쉽게 해고되도록 해서 생계를 위협한다는 것 외에 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노동유연화'는 회사가 노동자를 쉽게 고용하고 또 쉽게 해고할 수 있도록 비정규직, 외주 등을 늘리는 고용의 유연화지. 이처럼 고용과 해고가 쉬워지는 것은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지만 노동자의 삶은 불안정해지는 결과를 가져왔어. 1990년대 말 이후 계속된 노동유연화의 결과로 우리는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하고, 다른 사람과 경쟁하며, 심지어 사용자에게 밉보이지 않도록 숨죽이게 되었지. 노동이 유연화되면 일자리가 더 많이 창출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질 나쁜 일자리가 늘어날 거라고는 말해주지 않았어. 그러니 노동자는 안정된 삶을 보장받기 위해 정규직화, 직접고용 등을 주장하며 투쟁하는 것이지. 그런데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회사의 직접고용, 노동권 보장을 외치는 노동자들이 노동유연화 대신 '노동경직화'를 외치는 구시대적인 사람들일까?
한편 우리 먼지들 중에는 반대로 유연하게 노동하며 살고 싶고, 독립적으로 일하고 싶은 먼지도 있지. 먼지팀의 먼지들 중에는 직장인도 있지만 프리랜서, 독립연구자, 독립활동가로 살아가는 것을 시대의 흐름이자 숙명처럼 느끼는 먼지도 있어. 어떤 먼지는 '디지털 노마드'가 되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일하는 것에도 익숙해. 그런 우리는 회사에 다니며 일할 때 '노동환경이 경직되어 있다', '유연하지 못하다'고 느껴. 고민 끝에 퇴사를 하기도 하지. 왜 꼭 몇시까지는 출근을 해야하고, 여덟 시간 이상 회사에 앉아 있어야 하는 걸까? 왜 굳이 한 장소에 모여서 일을 해야 하는 걸까? 한 먼지는 "미래인들이 우리가 사는 모습을 어디선가 읽게 되면, 어떻게 저렇게 살았냐고 할 것 같아요"라고 했어. 지금처럼 수입이 들쭉날쭉한 것이 좋지는 않음에도 프리랜서/독립활동가가 되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먼지들은 이미 '신자유주의적 주체'가 되어버린 것일까? 우리는 그저 순진한 자유주의자인 것일까?
먼지들 생각엔 노동자를 쉽게 해고하기 위한 노동유연화는 20여년 동안 너무나 강력하게 진행되어 온 반면, 일하는 방식과 문화는 그다지 유연해지지 않았고 여전히 경직되어 있는 것 같아. 그러니까 고용은 지금보다 덜 유연해지고, 우리의 노동환경은 지금보다 더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는 거야.
이 글을 쓰고 있는 먼지, @nonmooner 는 모든 종류의 일에 똑같은 방식이 강요될 수 없다고 생각해. 지금의 일하는 방식이 경직되어 있다고 느끼는 먼지들은 wifi만 연결된다면 바닷가에 앉아서도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지. 디자이너, 편집자, 연구자, 기획자인 이 먼지들은 오히려 회사에 붙잡혀 있을 때보다 돌아다니며 일할 때 능률이 오르기도 할 거야. 하지만 제조업 노동자가 기계와 작업도구가 있는 공장을 떠나서 일할 수는 없어. 손에 익은 도구와 기계가 있는 일터에서 장기간 작업해온 노동자는 그곳에서 동료들과 관계를 맺고, 작업장 문화를 만들고, 경우에 따라서는 기술이나 노하우에 대한 자긍심을 갖게 될 거라고 생각해. 잘 알려져 있다시피 '신자유주의'로 우리 삶이 파편화되기 전에는 노동을 중심으로 우리 삶의 서사도 하나로 통합되어 있었다잖아.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노동유연화를 통한 '손쉬운 해고'는 노동자의 생계를 위협할 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삶,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자체를 흔드는 일이 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나는 "사회안전망이 충분히 만들어진다면, 노동은 유연화 될수록 좋다"고 말했던 그 수강생의 말에 동의할 수 없어. 독립적으로 유연하게 일하고 싶은 '프리랜서', '독립활동가'가 많아지고 있고, 그것을 미래의 노동형태로 여긴다는 말이 곧 노동자가 쉽게 해고되어도 된다는 말은 아니야. 그렇다고 자본은 악이고 노동자는 선이라는 말을 하려는 것도 아니라는 걸 이해해줬으면 해. 적어도 우리가 '노동유연화'와 '일하는 방식의 유연화'를 혼동하지는 말아야한다는 정도의 이야기로 생각해주면 좋겠어. 앞으로 점점 늘어날 프리랜서와 개인사업자들을 위한 제도 변화가 필요한 만큼, 노동유연화 대신 노동권을 보호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적어도 어느날 갑자기 해고 통보를 받고, 일터와 동료를 송두리째 잃는 일은 지금보다 훨씬 적어져야 한다고 생각해. 프리랜서 노동자도, 기업에 고용된 노동자도 삶이 지금처럼 불안정하지는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여름날, 굴뚝 위에서 싸우고 계시는 파인텍 노동자들이 무탈하시기를 바라며.
유연하게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직업을 바꾸는 일이(누군가에게는 부서를 옮기는 일만도) 쉬운 일이 아니죠..
그 어려운 일을 요구하면서 하지 못하면 죽어도 싸다고 말하는 사회가 괜찮은가 싶습니다.
멀쩡히 일하던 사람들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사지로 내몰리는 세상이니, 아프고 병든 사람, 약한 사람, 소수자, 난민 등등은 돌아볼 여유도 없는 것 같고요, 정말 하나도 괜찮지 않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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