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에 섹스하는 종족은 인간뿐이다.
비가 구질게도 오는 어느 날, 모텔 앞에서 구두닦이 하는 P 군은 열여섯! 하고 수를 세며 벽에 붙은 흑판에 정(正) 자로 숫자를 그리고 있다.
'뭘 적니?'
손님이 궁금한 듯 묻는다.
'오늘 오전부터 지금까지 여관에 들어간 낮거리 쌍이요.'
'싱거운 녀석, 할 일 도 어지간히 없다.'
'비 오는 날은 저 공치는 날이거든요. 심심해서 오늘은 몇 연놈이나 그 짓 하러 들어가나 좀 세어보는 중이에요.'
'그거 세봐서 뭐 하게...?'
'그냥요'
' 흐흐흐 그래서 인간이 어리석고 짐승만도 못하다는 거다.
짐승도 비 오는 날엔 절대로 흘레를 붙지 않는다. 왠지 아니?
그것은 질 좋은 자손을 수태 시키기 위해서다. 비 오거나 폭풍이 불거나, 천둥벼락 칠 때 수태되는 종자에겐 사가 끼고 마가 끼기 때문이야.
짐승도 아는 그 사실을 인간은 몰라, 설혹 안다 해도 지키려는 자는 별로 없어. 왜냐하면 짐승들의 암수 교접의 목적은 자손번창에 있지만, 인간의 교접 목적엔 다분히 즐기자는 의도가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비가 오던 눈이 오던 관계치 않는 거지...
자네도 이담에 장가들면 꼭 자식만은 청명한 날에 만들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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