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연 PD의 방송 이야기] 외국어 인터뷰는 ‘눈치 게임’

in #kr-politics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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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연 PD의 방송 이야기] 외국어 인터뷰는 ‘눈치 게임’

며칠 전 한 지상파 뉴스에서 드문 사고가 있었다. 소녀상 관련 일본 장관 인터뷰에 엉뚱하게 코로나19 브리핑 장면이 쓰인 것이다. 일본 특파원이 보내온 인터뷰용 영상과 스케치용 영상을 편집자가 착각해 벌어진 실수라고 한다. 외국인 인터뷰는 “영상 어디쯤 있는 것을 사용하라”는 타임코드(time code)를 적어 편집 의뢰하는데, 이때 영상 자체가 뒤바뀌면 이번처럼 꼼짝없이 사고가 발생한다.

외국어 인터뷰는 뉴스 제작진에겐 상당히 까다로운 일이다. 10초, 길어야 20초 내외지만 언어의 종류나 표현에 따라 조심해야 할 부분이 많다. 영어나 일본어같이 자주 쓰이는 언어는 좀 낫지만, 가령 아랍어나 아프리카 국가 언어처럼 비교적 낯선 언어는 번역할 사람 찾기도 어렵다. 제휴를 맺은 해외 영상 업체가 영어 번역까지 넘기기도 하지만 이 번역이 빠졌거나 직접 촬영한 영상은 제작진이 내용을 ‘알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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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종종 사용하는 방법이 현지 코디네이터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과거 스페인 와이너리 촬영을 갔을 때였다. 인터뷰 대부분이 포도주 제조 공정에 관한 것이니 전문 용어가 난무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번역사를 고용해도 직접 현장을 보지 않은 이상 정확한 번역이 어려울 것 같았다. 그래서 인터뷰 촬영 때 통역을 맡은 코디네이터 음성도 함께 카메라에 담았다. 하지만 여기도 난관은 있었다. 뉴스엔 길어야 20초 내외만 쓰이는데 설명이 너무 길었던 것이다. 그래서 현장에서 즉시 뉴스에 쓸 내용을 결정하고, 그것만 짧게 말해달라고 요청해서 몇 번이고 다시 촬영해야 했다.

외국어 인터뷰는 생방송 진행에도 부담이 된다. 해당 언어를 모르면 언제 자막을 넣고 뺄지 헷갈리기 때문이다. 인터뷰가 길어서 자막을 중간에 바꿔야 할 때는 난도가 더 높아진다. 사실 이럴 땐 방법이 없다. 그냥 인터뷰를 외워야 한다. 통째로 다 외울 순 없으니 자막 바꿀 타이밍과 인터뷰 끝부분만 외워서 자막을 넣고 뺀다. 하지만 큰 해외 뉴스가 터져서 인터뷰가 넘쳐날 땐 이것도 역부족이다. 그럴 땐 할 수 없이 ‘감으로’ 진행해야 한다. 방송 경력이 늘어날수록 눈치도 100단이 돼 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