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 스릴러 '벚꽂'
머리카락의 수명은 보통 5년 정도라고 한다. 따라서 머리카락은 매일 약 50개 정도가 빠지지만 새 머리카락이 계속 난다. 그런데 인간이 죽어도 머리카락은 곧바로 썩지 않고 한동안 유지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는 머리카락을 질긴 생명력을 지닌 것으로 본다. 그런데 왜 ‘내려오는 길’인가? 이 작품은 지난 2015년 금호미술관에서 열린 김은진 개인전 <남은 시간>에 전시되었다.
만약 <남은 시간>이 살아온 시간을 전제한 나머지 살아갈 ‘남은 시간’으로 간주할 수 있다면, ‘내려오는 길’은 올라가는 길만큼이나 쉽지 않다는 것을 암시한다.
말하자면 올라가는 길도 어려웠지만 내려가는 길도 질기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김은진의 ‘머리카락-산’은 삶의 무게를 은유하는 것이 아닐까? 내가 보기에 그녀의 그림은 절묘하게 삶의 균형을 잡고 있다.
내가 3년 전 보았던 그녀의 그림들은 인간의 이중적인 삶, 즉 행복과 슬픔, 좌절과 희망, 삶과 죽음이 서로 섞여 미스터리한 삶을 그려놓았다. 따라서 그녀의 그림은 삶에 대한 혐오와 경의가 함께 동반한다.
그러한 아이러니한 그림이 바로 김은진이 지향하는 회화적 리얼리티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그녀가 평정심을 잃지 않고자 부단히 노력해 그린 그림을 보고 있자니 슬펐다. 만약 그녀가 평정심을 잃은 그림을 그렸다면 오히려 속 시원했을 텐데 말이다.
난 혐오하는 인간에 애증을 갖고 그린 김은진의 그림을 보면서 슬펐다. 이 점은 이번 상업화랑의 신작들에서도 나타난다고 난 생각한다. 난 여기서 구작들 대신 그녀의 신작 세 점만 간략하게나마 읽어보고자 한다.
김은진의 ‘공중목욕탕(Public Bath)’(2017)과 ‘벚꽃’(2018) 그리고 ‘몽유병자(sleepwalker)’(2018)가 그것이다. 우선 ‘공중목욕탕’을 보도록 하겠다. 화면 중앙에 거대한 ‘대중탕’이 등장한다. 그 ‘대중탕’에는 다른 등장인물과는 달리 유난히 큰 인물이 출현한다. 그는 마치 다이빙하듯 몸을 ‘수영장’으로 던진 모습이다.
머시라? 그곳이 ‘목욕탕’이라기보다 차라리 ‘수영장’에 가깝다고요? 그러고 보니 ‘혼성탕’ 속의 출연진들 대부분이 수영복을 입고 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고대 로마 제국 때 목욕탕은 수백 명이 들어갈 수 있는 거대한 목욕탕도 있었다고 한다.
당시 로마 시민은 대형 목욕탕에서 목욕뿐만 아니라 책을 읽을 수 있는 책방이나 운동할 수 있는 운동시설, 음식물을 섭취할 수 있는 식당도 있었다고 한다. 뭬야? 국내 ‘찜질방’과 닮았다고요?
그렇다! 로마의 목욕탕은 일종의 커뮤니티 장소로도 사용되었고, 목욕하면서 (TV를 보듯) 연극도 볼 수 있는 공연 시설도 있었다고 한다. 특히 전성기 로마 제국의 목욕탕에는 마사지 서비스뿐만 아니라 매춘의 장소로도 쓰였다고 한다.
김은진의 ‘공중목욕탕’에는 TV를 시청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셀카를 찍는 커플도 있다. 오잉?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돼지)도 있는 것이 아닌가. 혼성탕 가운데 마치 뗏목처럼 보이는 것이 떠있다. 그곳에는 소파도 있고 변기도 있고 사마귀도 있다.
헉!!! 방역복과 방역마스크를 착용한 이들이 방역소독을 하고 있잖은가. 그리고 혼성탕 위쪽에 가죽을 재봉질 하는 이도 있다. 엥? 그 옆에 거대한 ‘비계(지방)’도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고 보니 그 왼편으로 헬스장에서 운동하는 이들도 있다. 러닝머신 위에는 마치 똥처럼 보이는 비계가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비계를 제거하기위해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닌가?
자, 이번에는 재봉질 하는 이의 오른편으로 가보자. 그곳에는 TV들이 몇 대 설치되어 있는데, 한 TV 위에는 ‘503’호도 적혀있다. 운동하는 사람과 줄넘기 하는 사람 그리고 이발을 하는 사람 또한 사우나에서 쉬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헉!!! 어떤 이는 목침 대신 해골을 머리에 배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고 보니 인체해부도에나 등장할 것 같은 해골들도 출현해 있다. 학교에서 교사로부터 꾸중을 듣는 학생도 있고, 모텔로 들어가는 자동차도 등장한다. 나열할 사항들이 너무 많아 그만 나열하겠다.
김은진의 ‘공중목욕탕’은 한 마디로 온갖 일상의 풍경들을 짬뽕해 놓은 그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면 곳곳에 운동하는 사람들과 비계들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무슨 뜻일까? 그녀는 <남은 시간>에서 ‘냉장고 냄새’를 역겨운 냄새로 표현해 놓았다.
우리는 몸을 지탱하기위해 게걸스러울 만큼 음식물을 섭취하고, 이내 몸의 비계를 제거하기위해 몸을 혹사시킨다. 그렇다면 그녀는 ‘냉장고’ 냄새와 마찬가지로 ‘공중목욕탕’의 냄새도 엮겨워하는 것이 아닐까?
문득 해시테그에 붙인 다음과 같은 핵심어들이 떠오른다. #헬스 #운동 #웨이트 #근력운동 #건강 #다이이어트 #뷰티바디 #꿀벅지 #몸짱 #복근 #스포츠모델...
자, 이번에는 ‘벚꽃’을 보도록 하자. 그것은 마치 뱀사다리 게임처럼 보인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모르겠다. 역기를 드는 사람, 체조를 하는 사람, 섹스하는 사람들, 라푼첼의 머리를 가진 두 남녀, 황소와 투우사, 성폭력을 가하는 장면...
‘벚꽃’에는 인간뿐만 아니라 각종 벌레들과 원숭이와 토끼 그리고 두꺼비 또는 물고기도 출연한다. 그리고 똥이 사람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그리고 ‘벚꽃’에는 뱀사다리에서 미끄러지는 사람들도 그려져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미지는 쉼 없이 달리는 인간들과 마치 사냥감을 쫒듯 총을 들고 그들을 따라가는 사람도 있다. 따라서 쉼 없이 달리는 사람들은 마치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더욱이 그들은 결승점에 다다를수록 해골로 변신한다는 점이다. 머시라? 그렇다면 누구도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느냐고요? 물론 화면 오른쪽 상단쯤에 보면 목적지에 골인을 하는 사람도 그려져 있다.
‘벚꽃’하면 무엇보다 화창하게 핀 분홍색 또는 하얀색 꽃잎들로 수놓은 모습이 떠오른다. 하지만 벚꽃은 꽃잎이 약해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면 쉽게 떨어진다. 그런 까닭일까, 벚꽃은 삶의 덧없음에 비유되곤 한다.
그렇다면 김은진이 그림에 ‘벚꽃’으로 명명한 이유가 ‘삶의 덧없음과 아름다움’이라는 꽃말을 고려한 것이 아닐까? 이를테면 그녀는 젊음과 아름다움을 유지하기위해 악착같이 운동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삶의 덧없음을 느낀 것 같다고 말이다.
그래서 난 김은진의 ‘벚꽃’을 보면서 슬펐다. 물론 그녀는 인간의 애처로운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놓았다. 문득 지난번 학고재에서 열렸던 밥정 스님의 유물전에 전시된 달항아리가 떠오른다. 그 달항아리에는 법정 스님의 시가 쓰여져 있었다.
“산에 꽃이 피네 꽃이 지네.” 간결한 시이지만 이보다 인생을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싶다. 두말할 것도 없이 꽃은 피고, 핀 꽃은 진다. 그것이 자연의 순리이다. 우리 역시 꽃과 마찬가지로 화려하게 피고 질 것이다.
난 평상심을 잃지 않고자 노력하여 그려놓은 김은진의 그림을 보았을 때처럼 균형을 잃지 않은 법정 스님의 시를 읽고 슬펐다. 난 상업화랑 전시장에 제공된 기다란 나무의자에 앉았다. 난 마치 넋 잃은 사람처럼 김은진의 그림들을 바라보았다.
난 김은진의 ‘벚꽃’과 ‘공중목욕탕’을 번갈아 보았다. 그러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구작 ‘걸(Girl)’을 바라보았다. 오잉? 그 작품 밑 작은 거울에 내 얼굴이 담겨있는 것이 아닌가. 거울은 절묘한 위치해 설치되어 있었다.
나는 거울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았다. 거울 속의 나는 거울 밖의 나에게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를 물었다. 거울 밖의 나는 거울 속의 나에게 ‘남은 시간’을 (...) 살겠다고 답변했다.
로마 대중목욕탕내용이 정말 신기하네요 ㅎㅎ
먹고 마시고 자고 찜질방같았다니...
재미있게 잘읽고 갑니다.
짱짱맨 호출에 출동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