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에 머물게 만드는 조직적 세뇌 2

in #investment9 days ago

"빈약(가난하고 검소함)을 편안하게 여기고 분분한 영화 따위는 뜬구름 보듯 하였다..."라는 대목이 퇴계 이황 관련된 설명에서 등장했던 것을 기억한다. 헌데 저 퇴계 이황이 말은 저리했어도, 땅만 30만 평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아는가? 아마 노비는 수백명이었을 듯 싶다.

부유함으로 이르는 길에 있어서 굉장히 많은 속임들이 존재한다는 생각이다. 옛부터 가난을 칭송하고, 찬미했 던 사람들이 정작 자신들은 어마어마한 부자이고, 집안에 노비가 5-600명 이었다는 것을 어찌 설명할 것인가?

"혜민"이라는 중이 있었다. "멈춰야 비로서 보이는 것들"이라는 책을 나도 읽어 보았다. 온갖 좋은 말들은 다 갖다 놨다. 헌데 이 중의 실체가 드러나서 "풀소유"라는 표현으로, 조롱당하고 놀림당하는 것을 본것이 기억에 남는다. 방송복귀 각을 재고 있었던듯 싶은데 어림없게 되어 버렸다.

부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면서, 천국에 재물을 많이 쌓으라고 메세지를 전한다. 그런데 그렇게 이야기하는 목사님의 교회가 은행 대출을 갚기 위해서, 여러 종류의 헌금들을 교회에 내도록 은근한 푸쉬를 하며, 교회 건물의 부동산 가치가 얼마가 나간다는 객관적 자료를 접하게 될때, "과연 저 목사님이 전하는 메세지에는 진짜는 진정성이 있을까?"싶은 생각을 하게 된다.

나 또한 예수님을 믿고 기독교인이지만, 저러한 방식의 2중 잣대적인 접근법으로 부에 대해 접근하는 사람들을 보면 위선적이라는 생각을 한다. 정작 본인은 어마어마한 부자였는데, 가진 땅만 30만 평이었는데, 가난과 검소함을 편안하게 여기고 분분한 영화를 뜬구름 보듯 했던 퇴계이황... 이 얼마나 이율배반적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땅을 30만평 소유할 일이 평생에 걸쳐 없을텐데, 가난을 권유받고 종용받는 대부분의 사람들...

부자이면서, 내가 부자가 될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발적 가난을 선택한것과
가난할 수 밖에 없어서 가난하게 사는 것이 과연 같은가?

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길수 있음에도 져주는 것과
힘이 없어 질수밖에 없어 지는 것이 과연 같은가?

대부분의 우리같은 사람들은 후자를 강요받는다. 대단히 세련된 방식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