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사변 육군전사 3권(61)
제3항 하동 진주 부근 전투
(一) 하동 부근 전투
7월 25일의 정황(부도 제33 참조)
25일 07:00 구례에 침입한 적 제6사단 1개 대대 병력은 후속하는 연대 주력의 내도에 따라 일단 병력 제편과 장비의 정비를 완료한 후 그 선발대 약 500명은 전차 1대와 포 5문의 엄호하에 10:00경 화개장 부근에 침입하고 동측방 359고지에 배치되어 있는 아 경찰대 1개 중대에 공격을 가하여 동 진지를 점령하였다. 화개장에서 철수한 아 경찰대는 경찰지원부대 약 200명과 합류하여 화개장의 적에 반격을 가하고 경찰대 1개 대대는 계속 화개장에 돌입하였으나 359고지의 적으로부터 측방 공격을 받아 아 병력은 분산 상태에 이르렀으나, 독전하여 12:00395고지 부근까지 진출 일대에서 격전을 전개하였다.
한편 진주에 위치한 전투사령부에서는 이 부대의 주력 2개 중대를 급파하여 359고지의 적에 대하여 지원공격을 한 바 적은 진지를 포기하고 구례방면으로 퇴각하였다. 이후 퇴각 중인 적은 구례 방면에서 동남하하는 약 1,000명의 지원 병력을 획득하고자 재공격 준비에 광분하였으므로 아군은 적의 반격에 대비하고자 이 부대를 359고지에, 경찰대를 동 고지 북측 능선에 각각 배치 방어진을 구축하였다.
14:00 적은 포 지원하 각종 화력을 총 집중시켜 재 공격을 감행하여 왔으므로 아군은 이 적을 요격 약 2시간에 걸친 치열한 방어전을 전개하였으나 열세한 장비와 중과부적으로 16:00 화개장을 포기하고 6㎞ 동남방 지점인 신기까지 철수한 다음 276.4고지에 군경합동으로 병력을 배치하고 신 방어진지를 구축하였다.
한편 아군은 추격하던 적은 16:00경 신기에 침입한 후 계속하여 276.4고지의 아군에 공격을 가하였다. 우세한 적에 압도되어 철수 일로에 선 아군은 불과 20분간 교전 끝에 다시 진지를 철수 구양면 삼우로(DR81~88) 부근까지 후퇴하고 신대리~개치에 이르는 선의 진지를 구축하였다. 19:00 적은 삼우로 부근까지 침입한 다음 대전차포 산포, 기타 각종포의 지원사격하에 침투를 개시해 왔다. 이에 아군은 장비 병력의 열세를 무릎쓰고 극력 저항하였으나 피해는 심대해지며 전세는 점차 불리하여 하동의 방어선도 위기에 이르렀다. 20:00 가중하는 적의 병력으로부터 아 방어진지가 붕괴되어 아군은 산악능선을 따라 하동 방면으로 철수하였다. 그러나 하동읍의 서쪽 교외를 동남류하는 섬진강은 적의 침공으로부터 개방된 불리한 지형적 조건이므로 아군은 하동을 포기하고 동 읍의 동측 2㎞ 지점인 807고지에 군경합동으로 병력을 배치하고 신방어진지를 구축하였다. 23:00 적의 정찰대 및 선발대 2개 중대는 드디어 하동에 침입하였다.
7월 26일의 정황
10:40 어젯밤 응원차 진주를 출발한 미군 1개 중대가 도착하여 경찰대 1개 중대의 협조하에 하동 동남방 3㎞ 지점 삼각지대의 116.5고지 일대에 병력을 배치하였다.
한편 육본 작명 제70호(부록 제21 참조)에 의거하여 이응준 부대와 민기식 부대를 통합지휘하게 된 육군소장 채병덕은 육본 작명 제72호(부록 제22 참조)에 의거 하동 방면에 남침하여 비양 경유, 진주와 사천 방면으로 침입을 기도하는 적을 저지 섬멸하고자 1개 중대를 직접 지휘하고 육군중령 김용제가 지휘하는 다 1개 중대를 통합하여 하동으로 향발하였다. 이 때 미군 1개 대대도 채 부대와 더불어 하동으로 전진하였다.
한편 우치고개(807고지)~(115.5.고지) 간에 배치되었던 아 군경합동대는 08:00부터 개시된 적의 치열한 공격을 받으면서도 진지를 고수하였으나 지탱치 못하고 황천강을 도하, 제2방어선으로 철수하고 448.3고지를 중심으로 병력을 배치하였다. 같은 시각 진주를 출발한 아 응원부대는 황천강 동안의 아 제2방어선에 도착하여 채 소장 지휘하에 철수한 아군 병력을 수습, 재편하고 채 부대를 448.3고지 능선 일대에, 경찰대를 437.4고지 능선 일대에 배치하였다.
이때 미군 1개 대대도 116.5고지로부터 철수한 1개 중대를 수습하고 271고지 능선 일대에 병력을 배치하였다. 15:00 현재 아군은 동진하는 적에 대하여 면밀주도한 반격태세를 취하였다. 15:20 하동읍에는 화재가 발생하였으며 적의 이동이 빈번함이 간취(看取)되었다.
7월 27일의 정황(부도 제34 참조)
증원부대를 얻은 아군의 포와 항공기 지원하에 08:00를 기하여 총반격전을 개시하여 10:00에 미군 선봉대가 하동에 돌입 계속하여 후속부대도 돌입하였으므로 적은 분산되어 광양 및 화개장 방면으로 후퇴하였고 아군은 잔적을 소탕 후 359.5고지~97고지~115.5고지를 연하는 능선 일대에 병력을 배치, 적의 반격에 대비하였다.
하동에서 퇴각한 적은 구양에서 장비와 병력의 증강을 보아 20:00에 역습전을 감행 약 2시간여에 걸쳐 격전이 전개되었다. 이 격전으로 인하여 피아공히 심대한 손실을 입었으며 아군은 점차 병력을 철수 사천 및 진주 방면으로 후퇴하고 23:00 현재 적은 하동을 완전히 재점령하였다.
㈜이날 채 부대 부대장 육군소장 채병덕(전 육군총참모장)은 총참모장 직을 떠나 의관에 복바쳐 몸소 최일선인 우치고개 전투에서 진두지휘 중 적의 흉탄에 적중되어 장렬한 전사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