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사변 육군전사 3권(49)

in AVLE 일상5 days ago

7월 20일의 정황

전주를 사수하는 아군은 증강된 적의 집중 화력으로 인하여 02:00 육본 작명 제58호에 의거(부록 제12호 참조) 관구 작전 사령부를 남원으로 이동하고 본부중대와 경찰대는 지연전을 계속하면서 임실 방면으로 철수하여 경찰대는 섬진강 남안인 임실 북방면 고지 일대에서 방어진을 구축 중이며 본부중대는 남원으로 이동하였다. 04:00 전주에 침입한 적은 일단 주력의 도착에 따라 1개 연대 병력으로 하여금 임실 북방에 투입시켜 섬진강의 도하를 시도하게 하였다. 서부 김제에 침입한 적은 계속 태인 방면으로 남진 중이었고 정읍으로 후퇴한 전남 경찰대는 12:00 전남으로 원대 복귀하여 전선 각 부대에 증강되었다. 13:00 사령관은 호남지구에 대한 당면의 위기를 타개하고자 그 직무를 제7사단 육군 대령 민기식에게 위임하고 신 국방장관 및 정 총참모장과 회견하여 병력 보충 및 남원, 운봉, 함양지구 작전에 대한 결론을 지었다. 우선 병력 보충 책으로서 광주 주둔 제5사단의 일부 병력을 육본 작명 제61호로서 23:00 남원으로 향하게 하였다.(부록 제13호 참조)

7월 21일의 정황

군산, 이리, 전주를 점령한 적은 각 방면에서 남침 중이며 그 일부 선발대는 기병과 공비 및 지방 폭도 등의 도합 1개 소대 병력으로써 08:00 정읍에 침입하였으나 아 해병대는 탄약 소진 및 보급 두절로 말미암아 부득이 철수 개시 목포로 향하였다. 이 급보에 접하여 지원 도래한 제26연대 1개 중대는 10:00 기습을 감행, 이 적을 대부분 섬멸하고 정읍을 탈환하였다. 한편 동부 임실 북방에서는 09:00경부터 우세한 적의 도하작전을 아 경찰대는 극력 저지 중에 있었고 육본 작명 제61호에 의거 어젯밤 광주를 출발한 아 제15연대 약 1개 대대 병력은 부연대장 육군중령 이영규 지휘하(이 부대라 칭함) 09:00 남원에 도착하고 출동 준비를 하였다.

적은 야음을 맞이하자 각 방면에서 도하를 감행하여 아 경찰대 방어선을 돌파하고 임실 방면으로 후퇴 중인 경찰대를 추격하였으며 서부 김제에는 군산으로부터 남하한 적 제13연대 주력이 집결 중이고 그 일부 병력은 이미 고부 방면으로 진출하였다.

7월 22일의 정황

전북 일대가 대부분 적의 병마에 유린되자, 전남 광주에 주둔한 사령부는 전남으로 지향하는 적을 도계에서 섬멸하고자 소재 경찰대를 동원하여 이른 아침 군경 각 부대를 장성, 담양, 영광의 각 북방 고지 일대에 배치시켜 진지를 확보하게 하였다.

08:00 육군본부에 출장 중인 사령관은 육본 작명 제58호에 의거(부록 제12 참조) 전 부대의 증원을 받아 남원에 도착하자 즉시 임실, 정읍 선에 남하하는 적을 저지하고자 서지구전투사령부 제1호를 발포 대기 중인 이 부대를 임실로 출동시켜 긴급 사태에 대비하게 하였다.(부록 제17 참조)

이때 진안을 방어 중인 경찰대는 덕유산 지구의 공비 약 2개 중대 병력으로부터 습격을 받아 장수로 후퇴하였다. 10:00 임실 방면으로 진출한 이 부대는 경찰대와 합류 적을 협공한 바 이에 당황한 적은 임실 북방으로 도주하였으므로 아군은 궤주(潰走)하는 적을 추격 섬진강까지 진출한 다음 요충 일대에 방어진지를 구축하였다.

14:00 태인에는 김제로부터 남하한 적 약 2개 대대 병력이 정읍 방면으로 진출할 기운을 보이며 신태인에는 군산~이리로부터 이동한 적 제6사단 및 기갑부대가 집결 중이었고 16:00 고부에는 김제로부터 침입한 적 약 1개 중대와 아 경찰대 간에 격전이 전개되었다.

22:00 태인에서 남하 중인 적은 도중 신태인으로부터 남하한 적 일부와 합류하여 전차 4대를 선두로 정읍 시내에 돌입, 위압을 가해 왔으므로 아군은 지구전을 계속하지 못하고 장성으로 철수하였고 고부에서 교전하던 경찰대도 17:00 고부를 철수, 심야 고창에 도착하였다.

적은 각 방면에서 아군의 퇴로를 따라 남침 중이었으나, 동북 임실 북방은 섬진강을 중심으로 피아 소규모적인 수색전을 계속하였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