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사변 육군전사 3권(87)

9월 4일~8일까지의 정황

9월 4일 08:00 미 제8군사령부는 장차 감행될 전체적인 총 반격 작전을 위하여 대구 정면의 제1기갑사단 및 중부 동부선의 국군에 대하여 국부적인 공격을 명령 하달하는 동시에 이에 호응하여 미 제2사단 및 미 제25사단으로 하여금 침투한 적을 낙동강 측으로 구축하려 하였다. 9월 6일 04:00 미 제38연대는 좌우 인접 부대와 밀접한 협의 하에 진지로부터 나아가 공격을 개시하였고, 현풍 부근의 미 제23연대는 도리어 공격을 취하는 적에 대하여 반격을 가하고 좌익 미 제38연대에 호응하였다. 한편 창녕지구의 아군은 창녕 읍내에 침입을 시작한 적에 맹렬한 반격을 감행하여 그 침입을 저지하는 반면 공격을 계속하여 적을 격퇴시켰다. 또한 영산 방면의 아군은 무안리의 예비 병력을 동원하여 침공을 계속하는 적에 전면적인 반격을 감행하였으며 이때 남부 인접 부대인 미 제25사단 지구에서 미 제25연대가 강을 건너 지원 공격을 감행하였다.

동부 및 남부로부터 협격을 받은 적은 일대 혼란을 일으켜 후퇴를 개시하고 동일 16:50 강 동측 311고지의 진지에 의지하여 발악적인 저항을 지속하였다. 그러나 이날 19:00 현풍지구의 적은 반격하는 아군에 반복 공격을 가하여 왔으며 종야 치열한 전투를 계속하였다. 9월 7일 02:00 미 제23연대는 작야에 계속하여 당면의 적을 공격하고 적에 막대한 손해를 주었으며 동일 15:00 적 주력은 그들의 본래의 침공로인 낙동강 돌출부의 283고지 및 그 동북방의 209고지에 의지하여 최후의 저항을 시도하였다. 9월 8일 아군으로부터 정면 공격 혹은 역습을 받아 각 지구에서 일대 혼란을 일으켜 갈 바를 모르고 우왕좌왕하였으며 각기 분산되어 낙동강을 도하 도주하였다.

9월 9일~12일까지의 정황

아군은 거반 9월 1일부터 시작된 전면적인 적 대부대의 공세에 대하여 고귀한 인명의 희생을 다수 속출하면서 용감히 역전분투하고 자유와 그 명예를 수호하였다. 9월 9일부터 12일까지 이 전선에 있어서 피아 양군은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여 국부적인 탐색전과 전초부대의 소규모적 접전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아군은 결코 무의미하게 이러한 정찰전을 계속한 것이 아니었으며 전 전선 총체적인 균형을 유지하면서 차기의 대 반격전을 준비하였던 것이다.(요도 제43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