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mp of the day - 20230110
차별주의는 차별해야 하는 존재를 생산하는 한에서만 정체성을 구분하지 그 정체성 안 개체들의 차이에는 아예 관심 두지 않는다. 즉, “우리는 중국인이 아니에요”라고 아무리 부르짖어봤자 동양인을 차별하기로 마음먹은 인종차별주의자의 귀에 그 소리는 “멍멍!” 하는 소리와 아무런 차이가 없다. 들리지 않는다. 들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차별주의는 언제나 세상을 정체성으로 구분 짓지만 자신들이 구분 짓는 정체성의 내부 차이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것은 그들의 관심이 정체성이 아니라 차별 자체이기 때문이다. 정체성의 특징에 의해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차별하기 위해 정체성을 구분한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차별하기 위해 필요한 만큼만 정체성을 구분한다. 그 이상에 대해서는 눈과 귀를 닫아버린다. 그들이 하려는 것은 내 정체성을 상세하게 구분하기가 아니라 차별의 실행이기 때문이다.
- ‘정체성’의 정치에 맞서 정체성의 ‘정치’로 - 한겨레21, 엄기호 사회학자·청강문화산업대학 교수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교육 시간에 흔히 쏟아지는 질문 중 하나는 성적지향이 선천적인 것이냐, 아니냐다. 그 질문엔 선천적이어서 본인의 의지로 바꿀 수 없는 것이라면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시혜적 태도가, 후천적이어서 바꿀 수 있는 것이라면 바꾸는 게 ‘정상적’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그러나 붉은일반 회원들은 그런 질문과 치열하게 대면한 끝에 깨닫게 되었다. 성적지향이 바꿀 수 없는 것이라면 존재 자체로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지만, 후천적이어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면 내 삶을 좌우할 그 ‘선택은 바로 내가 해야하는 것’이라는 자명한 사실을 말이다.
언젠가 어른들이 성소수자의 존재에 대해 설왕설래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던 아홉 살 조카가 정말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했던 질문은 타인의 존재를 두고 찬성과 반대를 논하는 그 모든 의견을 한 마디로 일축했다. “이모, 사랑하는 게 왜 나빠요?” 그렇다. 우리의 성정체성과 무관하게 우리는 혐오가 아니라 사랑 편에 섰을 뿐이다.
- [명인의 동지로 만나는 페미니즘] “넌 어쩌다가 이성애자가 되었니?” - 노동과세계, 명인 인권교육연구소 너머 대표
쟁여놓은 SCT도 거의 다 써 가네요
슬슬 스왑할 때가 와 가는 것 같은데 스왑이 잘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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