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 자유와 구속, 그리고 미래] 1. 로마. 살아남기 위해 죽으러 간다.

in #coinkorea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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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군대를 가야 할 젊은이들 사이에 해외 파병이 꽤나 핫하게 떠오른 적이 있습니다. 전방에서 아무리 굴러봐야 몇만원 받지도 못하고 PX는 커녕 샤워를 할 수 있을지 없을지를 걱정해야 하는 청춘들에게 전장이라 할지라도 비교적 후방에서 근무하는데다 수당을 몇백만원 단위로 받을 수 있다고 하는 해외 파병은 그야말로 기회였죠.

사회 초년생에게 돈이 있어봐야 얼마나 있겠습니까. 작게나마 밑천 마련하는거죠. 일각에서는 등록금 대출을 갚기 위해 신청한 사람들도 있었고, 그 돈을 모아 조그만 사업을 하겠다고 하는 친구도 있었고, 공부를 더 해보고 싶다고 하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그들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군인의 목숨 가격은 과연 얼마기에, 그들이 미래에 얼마나 큰 가치를 이룰지 알 수 없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별거 아닌 그 푼돈에 목숨을 걸 각오를 했을까 하는 생각 말이지요. 한편으로는 슬퍼지기도 했습니다. 하루하루 어찌 될 지 모르는 전쟁터에서, 용병으로 목숨을 내다 팔고 남의 목숨을 빼앗으며 어떻게든 생존을 해야 했던 사람들이 떠올랐기에 말입니다.


로마의 군단병레기온, Legion입니다. 이렇게 보니 무슨 아르마딜로 같기도...

많은 사람들은 로마의 군단병 제도를 보면서 로마인들은 사회적 책임의식이 강했고, 그를 통한 강력한 국가 체제가 구축되면서 고대 지중해의 패권을 차지했다고 생각합니다. 공화정이라는 제도 또한 로마가 시작했으며, 최초의 민주주의를 만들었다고들 말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로마가 에트루리아 왕조를 무너뜨리고 공화정을 세운 것은 맞습니다만, 그저 고대의 통치 체계를 바꾸었을 뿐이죠.

규모가 작고 개별 귀족의 힘이 약했기에 상호 견제와 감시, 합의가 가능한 체제를 선택했을 뿐입니다. 그리스와 같이 로마 역시 재산이 많은 사람이 많은 권리를 행사했고, 재산이 적은 사람은 적은 권리를 누렸습니다. 재미난 점은, 병역의 의무는 계급이 높은 시민들만이 누릴 수 있는 의무였다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이야길까요? 로마 사람들은 목숨을 별도로 저장해놓고 살아가는 것도 아닐텐데 말입니다. 사실 전쟁은 그 당시 최고의 재산 획득 수단이었습니다. 남의 재산을 빼앗아 약탈하는 것은 합당한 부의 축적 수단이었습니다. 병사들에게 전쟁은 '부자가 되는 지름길'이었죠. 그런 까닭에 병사들이 큰 부를 축적할 수 있었고, 이후 갈리아 원정 등을 통해 거대한 부를 획득한 신흥 군벌들이 득세하게 되자 로마의 공화정은 붕괴하게 되었죠.


워크래프트 3의 오크 호드는 필리지Pillage, 약탈 를 통해 건물 타격으로 자원을 얻습니다.

요는 권리와 책임이 '생명 수당'이라는 이름으로 형평성을 이루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약탈 사회에서 가장 귀한 것은 무력입니다. 무력은 눈에 보이지 않는 사기Morale라는 존재를 제외하면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병력의 수와 병력의 무장상태죠. 그 모든 것은 다시 돈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돈이 있고 무력이 없는 사람이 병력을 돈으로만 고용하면 어떻게 될까요? 고용된 용병이 순순히 (약탈한) 재물을 줄까요? 그렇지 않겠죠. 외려 칼을 들이밀고 그 돈까지 다 뺏으려 하겠죠.

안보 체계가 확립되기 전의 고대 사회는 다분히 폭력 지향적이고, 군벌 지향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로마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개인이 사병을 함부로 늘일 수 없기에 먼저 스스로의 무장 상태템빨부터 높여 나가는거죠. 평민 출신의 농부들과 재산이 적은 젊은이들은 상대적으로 구비하기 쉬운 긴 투창이나 얇은 가죽 갑옷으로 무장했습니다. 제일 먼저 전열에서 투창을 던지는 벨리테스와 바로 그 후열에서 빠르게 기동하며 적을 교란, 체력을 고갈시키는 하스타티가 그들의 역할이었습니다.

그 뒤에 본격적으로 적의 종심을 공격하는 주공은 중장 보병인 프린키페스, 중장 창병인 트리아리였습니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견고한 갑옷과 철제 검을 마련하고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재력을 갖추고 있는 30~40대의 유산 세력들이 많았습니다. 돈이 없는 이들이나 젊은 사람들은 경장 보병, 투창병 역할만 할 수 있었다는 거죠. 가장 선봉에 선다는 것은, 가장 먼저 죽는다는 소립니다.


현대전의 최선봉인 창병대는 해병과 헬리본입니다. 물론 이들을 소모품으로 쓰진 않지만요.

투창은 소모성 무기입니다. 전투를 하면 무기를 상실할 수 밖에 없습니다. 가장 먼저 투창으로 서로의 예봉을 꺾으려 하기 때문에, 초반 전투에서 패주하면 투창은 투창대로 쓰고 건지는건 하나도 없게 됩니다. 선봉에 서기 때문에 부상을 입을 수도 있습니다. 중장보병이 본격적으로 접전을 시작해야 약탈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 당시 중장보병은 확실한 승리가 보장될 때 비로소 투입되는 카드였거든요.

많은 평민들은 전쟁에서 일확천금을 얻을 것이라 생각하고 참전했지만, 실제로는 투창값과 치료비만이 쌓여갔습니다. 늘상 소위 말하는 '대박'이 나는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본국의 채권자들은 그런 평민들에게 가차없이 돈을 빼앗으려 했고, 심지어 파산한 일부 로마 시민들은 노예로 귀족에게 팔아버리거나 외국에 팔기까지 했습니다. 로마의 자유민이자 군인이, 무기값을 마련하지 못해 파산하고 해외에 노예로 팔려가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배워 온 로마의 역사와는 너무나 다른 이야기입니다.

로마와 카르타고의 전쟁인 포에니 전쟁에서 한니발은 로마를 꺾은 신묘한 전술의 왕으로 포장되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실제로는 조금 다릅니다. 물론 한니발을 폄훼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진짜 적은 로마 내부에 있었던거죠. 파산의 위험을 안고 목숨을 건 로또를 긁으러 가는 자유민들에게, 로마 공화정은 세르빌리우스의 법령채권자가 빚을 갚지 못한 평민 병사를 노예로 삼거나 땅을 빼앗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파기하면서 군인들의 뒤통수를 맛깔나게 후려갈겼습니다.

아무리 로마 레기온이 강력하다 하더라도 투창병이 상대의 움직임을 봉하고, 경장 보병이 미리 교란작전을 통해 상대의 진형을 흔들어놓지 않는 체력을 빼놓지 않는다면 남는 것은 둔해빠진 중장보병밖에 남지 않습니다. 경기병이나 투창병에게 쉽게 유린당할 표적이 될 뿐이죠. 카르타고 군대가 로마를 유린하건 말건 시민 병사들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빚을 지고 외국에 노예로 팔려갈지, 혹은 그냥 이대로 카르타고의 노예가 될지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거죠.


로마 최초의 성문법, 12표법은 이렇게 탄생했습니다.

귀족들을 움직이게 한 것은 '당장 로마가 망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었습니다. 그 이전까지 로마는 그리스와 같이 일반 병사들을 그저 귀족이나 상위 시민의 소모품이자 약탈 대상으로만 보아 왔었던 것입니다. 거대한 큰 적이 생기고, 그 적을 막기 위한 합의의 과정에서 비로소 하나의 체제가 완성되었고, 철저하게 전쟁에서 얻은 경제적 이윤을 분배하고 이윤을 보호하기 위한 체제는 '사유재산'과 '권리와 의무의 동등성'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로마의 성장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바로 그 경제 체제가 약탈이라는 굉장히 빈약한 기반 위에 세워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로마는 아펜니노 반도의 지리적 입지로 인한 특징 상 농사에 결코 유리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땅이 소금기 가득한 모래이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이탈리아 하면 떠오르는 작물이 올리브나 포도정도인 것을 생각하면 당시엔 어땠을지 짐작조차 가지 않습니다.

게다가 동지중해와 흑해를 잇는 요충지인 그리스와 달리, 거대한 지중해의 무풍지대를 끼고 있는 로마는 무역을 하기에도 결코 좋은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이후 갤리어스라는 함선이 발달하기 전까지 무조건 북쪽을 뚫어나가며 약탈 경제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실제 기원전 2세기경 로마 국고 수입의 3/4는 전쟁배상금이, 나머지 1/4는 정복지에서 거두어들인 세금으로 충당되었습니다.

한번 흘러들기 시작한 돈의 달콤한 맛은 로마를 취하게 만들었습니다. 허나, 지금까지 말했듯 전쟁으로 인한 부의 축적은 굴러가는 눈덩이와 같아 있는 자들에게는 더욱 빠른 재산 증식을, 없는 자들에게는 더 큰 빈곤을 주었습니다. 특히 대부분의 귀족이나 중장보병들이 은퇴하면서 모아둔 돈을 부동산 매입에 쏟아붓자 부동산 버블이 발생하고, 다시 한번 수많은 자유시민들은 빚쟁이 신세가 되었습니다.


당장 이오니아 해, 아드리아 해, 티레니아 해가 죄다 무풍지대를 끼고 있죠.

로마의 경제는 지금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이 매우 많습니다. 장기적으로 유지되지 않는 성장이라는 연약한 경제 기반 위에 세워진 시스템이 망가지게 될 경우 어떤 부작용이 발생하는지, 구성원들에게 합리적으로 경제적 결실이 배분되지 않고 일부 강자들이 사회의 구성원들을 착취하는 방향으로 시스템이 잘못 작동할 때 제동장치가 없다면 어떤 파국이 발생하는지, 그리고 의무와 권리가 대응되지 않고 어떠한 방법으로든 우회되는 순간 어떠한 일이 발생하는지 말입니다.

결국 로마라는 화려한 제국의 시작과 끝은 화폐 경제에서 시작해 화폐 경제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로마의 쓸쓸한 몰락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결코 그들이 번영했던 시기에 남긴 문화재 뿐만은 아닐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사회는 과연 올바른 분배의 정의와 절차적 정의를 이루고 있는지, 일부 강자들이 사회 전체가 만드는 재산을 독식하며 사회 구성원들을 착취하지는 않는지에 대해 우리는 계속 질문해야 할 것이고, 답을 찾아야 하며, 토론하고 타협하며 문제의 답을 찾아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모두가 오래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자, 행복해 질 수 있는 길이 될 것입니다. 로마의 화폐 경제는 권리와 자유를 상징했지만, 반대로 의무와 구속을 보여주기도 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사실 타자도 군 생활 할 때 어디 파병 없나 하고 고민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제 기수 전후로는 파병 가는 기회도 없었고 가는 사람도 극히 소수의 축복받은 인원들이 꿀 빨러-_-가는 경우였다고 하더군요. 남들은 진짜 목숨 버릴 수도 있다고 가는데... 입맛이 썼습니다.

좋은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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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을 읽어보니 그간 로마에 대해서 모르는 점이 많았다는 자각을 하게 됩니다. 모든 것은 결국 재화라는 것으로 연결되는군요.

한니발 얘기를 하시니 오래 전 이야기 전쟁사라는 책에서 읽은 내용이 기억납니다. 무적의 로마 중장보병을 망치와 모루 전략으로 일격에 섬멸한 한니발의 신화적 사건 칸나이 전투. 이 사건은 두고두고 음미할만 한 것 같습니다. ^^

네. 돈이 준 자유와 구속이 콘셉트니까요 ㅎㅎ. 결국 한니발이 이길 수 있었던 이유가 자유로운 진형 변환을 통한 후위 타격이었고, 경장 보병대가 제 역할을 못할 때 레기온이 보인 결정적 약점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기보가 없는 순수 기갑은 인민군에도 털릴 수 있다는거죠 ㅎㅎ

로마 붕괴 이후에 혼란기가 다소 있긴했으나, 오늘날 유럽이 아시아를 추월할 수 있던 이유는 오히려 로마의 붕괴가 아닌가 싶습니다 .

새로운 시리즈 재미납니다 ㅎ
근데 녹티 스님은 역사만 잘 아시는게 아니라 군대쪽도 잘 아시는거 보면 밀덕이 아니신가 의심이 좀 듭니다.....ㅎ

그래서 고대일수록 약탈을 막기 어려웠다고하죠. 발전하면서 땅을 점령해야하니 점차 금지하게되었지만요.

잘 읽었습니다.
로마인 이야기도 겨우 읽고 그 마저도 완독하지도 못한 저에게는 거의 새롭게 보입니다.

장기적으로 유지되지 않는 성장이라는 연약한 경제 기반 위에 세워진 시스템이 망가지게 될 경우 어떤 부작용이 발생하는지, 구성원들에게 합리적으로 경제적 결실이 배분되지 않고 일부 강자들이 사회의 구성원들을 착취하는 방향으로 시스템이 잘못 작동할 때 제동장치가 없다면 어떤 파국이 발생하는지

모두가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바꾸려고 하지 않으면 예상되는 결과 같습니다.
경제적 자유를 이루기 위해서라도 다 같이 토론하고 타협해서 결과를 도출 해야겠죠.

이제는 머리가 잘 안 돌아갑니다.
그래도 나쁜 머리 이용해서 잘 읽었습니다.

본문과 약간 상관없기는 한데, 한국군이 병사들까지 대규모로 보냈던 마지막 파병이었던 2004년 이라크 얘기를 해보자면...

  1. 지원한 병사들의 가장 큰 이유는 '여기만 아니면 어디든지 가겠다' 였습니다. 물론 돈도 중요하지만 이놈의 군대, 어디로든 벗어나고 싶다는게 컸지요. 실제로 지원자들 보면 돈 안줘도 가겠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2. 이라크에서의 구체적인 임무는 재건지원이었습니다. 즉 미국이 원하던대로 저항세력 찾아서 싸우는 임무가 아니었고, 애초에 국회에 동의를 구할때도 비전투 임무만을 상정한 것이었습니다. 파병가는 병사들 중 이러한 상황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으며, 일단 지금처한 이놈의 상황을 벗어나고자 묻지마 지원 ㅡ.ㅡ 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단 전투임무를 상정하고 파병되며 수백명의 사상자가 날거라고 설명해줬어도 지원자들은 거의 대부분 남았을 겁니다. 젊고, 실전은 겪어보지도 못했으며 약간의 기대심리마저 있었으니까요. 1차대전 참호전에 지원한 영국 시골 청년같은 느낌이랄까...

  3. 2에서 말한 바대로 한국군은 이라크 가서 대체로 꿀빨았습니다. 전투도 없었고 국내에 남았더라면 했을 각종 훈련과 작업도 좀 줄었죠. 당시 병력부족에 시달리던 미국 대신해서 싸워야 하는거 아니냐는 말도 있었지만 (영국군 처럼) 그랬다면 누군가는 분명 집에 돌아오지 못했을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당시 정부는 나름 현명하게 판단했다고 봅니다.

파병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곤 생각지 않습니다. 다만 타 국가의 젊은이에 비해 그런 극한의 선택을 겪어야만 것 자체에 방점을 찍고 싶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로마에 대한 지식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이야기에 기반하는데, 녹티스크님의 글을 통해 새로운 부분을 알게 되네요
오늘도 좋은 글 감사합니다

시오노 나나미는 역사가라기보다 몇몇 황제 덕후에 가까워서 말입니다(-_-)

몇몇 이라기보다는 카이사르 사생팬에 더 가깝다고... 카이사르 편만 2권에 나눠서 저술했죠 ㅋㅋ

지금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사회는 과연 올바른 분배의 정의와 절차적 정의를 이루고 있는지, 일부 강자들이 사회 전체가 만드는 재산을 독식하며 사회 구성원들을 착취하지는 않는지에 대해 우리는 계속 질문해야 할 것이고, 답을 찾아야 하며, 토론하고 타협하며 문제의 답을 찾아 나가야 할 것입니다.

기득권이 바뀔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서있는 사람들이 문제의식을 확고히 가지고 조금씩 바꾸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카르타고의 칼날이 로마를 조이자, 그들도 쫄아서 협상 테이블로 나왔었던 것 처럼... 표를 얻으려면 쫄려서라도 나와야겠죠 ㅎㅎㅎ 투표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저는 로마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그럼 로마에 대해서 이야기를 안 하면 되겠죠. 그러나 다른 여러가지들처럼 로마도 가십적이게 잘 다뤄지는 모양인데..말하는 사람이 읽은 것은 시오노 나나미 책뿐인 것 같고, 뭐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본문과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만 했군요. 보팅했고 오늘 글도 잘 보았습니다.

잘 모르니 이야기 하면 안된다기보다... 더 이야기 하는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도 잘 몰라서 계속 물어봅니다. “다스는 누구껍니까?”

올바른 분배와 절차적 정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오늘날에도 반복될수 있는 역사가 되겠군요 항시 더불어 잘 살자는 noctisk님의 뜻이 더 잘 보이는글 인것 같습니다

지금까지도,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는게 슬픈 이야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