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EP!T History: 저금리 정책과 버블, 그리고 모기지 사태.
블록체인 업계에서 유명하신 분들도 2008년 모기지 사태를 일명 ‘신-자유주의의 몰락’정도로 치부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도 그럴것이 당시 연준의 의장은 앨런 그린스펀(Allen Greenspan)으로 레이건 행정부 막바지에 레이건 대통령이 임명한 ‘친-시장주의자’로 알려져있기 때문입니다.
앨런 그린스펀은 아인랜드(Ayn Rand)라는 자유지상주의 철학자에게 아주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물론 아인랜드는 자기 자신을 자유지상주의자라고 이야기 하지는 않았습니다만, 고전적 자유주의를 신봉하고 아담 스미스의 시장주의를 절대적으로 신봉했다는 점에서 자유지상주의자와 그 궤를 같이 합니다). 그는 자서전에서 “아인랜드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상한 예측만 해대는 방구석 경제학자나 되었을 것”이라며 아인랜드라는 사람이 자기 자신에게 큰 영향을 끼쳤음을 인정했습니다.
사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모기지 사태의 주범인 앨런 그린스펀의 실패가, 곧 신-자유주의의 실패였다고 보시는 분들도 많이 계십니다. 하지만 그린스펀이 의장으로 있을 때 연준의 정책을 보게된다면, 절대로 그를 시장주의자로 부를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은 앨런 그린스펀 시대의 연준이 어떤 정책을 펼쳤고, 이 정책들이 어떻게 미국 부동산 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는지 알아볼까 합니다.
닷컴 버블과 그린스펀의 정책
비트코인에 투자하시는 분들이라면, 닷컴 버블에 대해서 한번쯤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당시에 회사 이름에 .com만 들어가도 광기의 투기가 벌어졌다는, 그 광란의 시장은 2001년에 서서히 붕괴되기 시작했고 닷컴 버블의 폭발은 그린스펀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린스펀이 닷컴 버블을 해결하기 위해서 쓴 정책은 바로 금리인하 정책이었습니다. 그린스펀 의장은 당시에 6.5%에 달했던 금리를 2003년 6월까지 1%로 낮추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당연히 금리가 떨어지면 화폐가 풀리겠죠? 이러한 원리에 대해서는 저번주 칼럼에 기재를 하였으니 그것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2000년~2007년까지 시중에 풀린 달러의 양이 여태까지 미국에 풀렸던 달러의 양을 뛰어넘을 정도라고 하니, 믿겨지십니까? 역사적으로 한 번도 없었던 초저금리 시대가 시작이 된 것이었죠.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야기한 초저금리 정책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사실상 마이너스 금리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습니다. 이정도 저금리에 돈을 빌릴 수 있는 은행의 입장에선 연준에 돈을 빌려서 조금 더 높은 금리로 재대출하는 것이 훨씬 이득인 것을 알기에 여러가지 대출 상품을 쏟아내는 것은 당연지사였죠.
모든 은행이 여러가지 대출 상품을 내놓으면서 경쟁이 심화되었고, 당시에 7~8%에 달하던 모기지 금리가 4~6%대로 떨어졌습니다. 대출에 대한 수요보다 공급이 더 많은 상황이었고 당연히 이러한 상태에서 경쟁이 더 과열되면서 은행들은 고객을 늘릴 수 있는 방법들을 모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다양한 대출 상품이 나온 상황에서 경쟁력을 높힐려면 대출 자격 요건완화 밖에는 없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전에는 모기지 대출을 받을 수 없었던 사람들도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상황까지 치닫게 됩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초저금리 시대 이전에는 모기지 대출을 받기 위해선 수입을 증명해야 했는데요. 하지만 금리가 내려가게 되면서 경쟁이 치열해지고, 더 많은 고객들을 확보하기 위해서 수입을 따로 증명하지 않고 수입과 자산이 있다고 선언만 하면 모기지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그야말로 말도 안되는 시장이 생기게 된 것이죠.
이러한 광기의 대출시장으로도 모자랐는지 “No Income, No Asset(NINA)”모기지가 나와서 수입과 자산이 없어도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상품이 등장하기에 이릅니다.
모기지 대출에 대한 수요가 많아지면 당연히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어오르게 되겠죠. 2006년 주택 가격은 최고치에 달하게 됩니다.
버블의 붕괴
버블의 붕괴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정부가 모기지 대출을 보증해주는 기준을 갑자기 높혀버린 것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연방주택청(Federal Housing Administration)은 민간인 모기지 대출자들의 대출을 보증해주는 대신 일정한 비용을 받았는데, 그게 2000년대 중반에는 3%정도였다가 2006년도엔 21%로 올리고 보험료도 2배 가까이 인상하게 됩니다.
당연히 이러한 비용증가와 보험료 인상이 부담스러웠던 대출자들은 집을 내놓게 되면서 주택 가격의 폭락은 시작됩니다.
또한 대출의 원금 상환개시가 시작되자 연체와 상환불능이 생겨났고(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신용 불량자에게도 대출을 해주었으니 말이죠) 시간이 더 흐르면서 이러한 상환불능 사태는 더 심화되었습니다. 하지만 연준은 불난집에 부채질하는 꼴로 2000년대 중반에 다시금 금리를 가파르게 올리게 되고 이러한 고금리정책은 상환불능 사태를 더욱 심화시키게 되었죠. 그리고 이러한 문제들이 금융시장으로 전파되어 금융위기로 이어진 것입니다.
새로운 의장 벤 버냉키, 그리고 예측의 실패.
그린스펀 의장 다음에 연준의 의장으로 취임한 벤 버냉키 의장은 주택시장 버블이 붕괴되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서브 프라임 시장에서의 문제가 금융시장까지 전파되지 않을 것.
벤 버냉키 의장은 상당히 자신감이 있었는데요. 왜냐하면 그가 1930 대공황 분석에 대한 전문가였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이러한 부동산 시장의 붕괴는 금융시장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부동산 시장 투자를 실패해서 막대한 손해를 입은 메릴린치나 베어스턴스가 도산하게 되면서 금융시장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벤 버냉키가 생각했던대로 시장은 움직이지 않았고, 결국 미국은 1930 대공황 이후로 최악의 경제 위기인 모기지 사태를 겪게 됩니다. 그리고 누구보다 1930대공황에 대해서 심도있게 연구한 버냉키 의장은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라는 카드를 꺼내게 되는데요.
다음주엔 양적완화와 연준의 새로운 기술에 대해서 설명하고, 드디어 여러분들이 기다리시던 대안화폐의 등장에 대해 다루어볼까 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othbardia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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