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논개사당, 합미성, 타루비

in #busy7 years ago

안녕 하십니까?

우리 문화재 관련하여,
잘 모르시는분이 많아 정리를 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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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1] 논개사당

종 목 : 전라북도 기념물 제46호
지 정 일 : 1981.04.11
소 재 지 : 전북 장수군 장수읍 두산리 산3
시 대 : 근대

임진왜란 때 순국한 주논개의 초상화를 모시고 제사 지내는 사당이다.
논개는 진주성이 함락될 때 왜장을 유인하여 함께 남강에 투신하였다.

논개의 순국 사실은 입으로만 전해 오다가 유몽인의 『어우야담』에 수록되면서 글로도 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중에 충신·효자·열녀를 수록한 『동국신속삼강행』에는 기생의 정열을 표창할 수 없다는 이유로 누락되었다.

이런 사실과는 관계없이 진주 고을민들은 강변에 제단을 마련하여 논개의 넋을 위로하고 국가적인 추모제전이 거행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 마침내 영조 16년(1739)부터 국가의 지원을 받아 의암 부근에서 제를 올릴 수 있게 되었다. 고종 5년(1868)부터 가무와 함께 3일간의 대규모 추모행사를 마련하였다.

일제시대 때 중단되었다가 1954년 당대 일류화가인 김은호가 고증을 통해 논개의 초상화를 그리고 부통령인 함태영 선생이 직접 현판을 쓰면서 남산 공원에 사당을 세웠다.

1973년에는 성역화 작업이 승인되어 장수읍에 2만여 평의 대지를 마련, 사당을 이전하고 담장과 삼문을 세우고 단청까지 말끔하게 단장하였다.

지금은 매년 음력 9월 3일을 장수군민의 날로 정하고 해마다 큰 규모의 제례를 올리고 있다.

[2] 합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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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문화재청)

종 목 : 전라북도 기념물 제75호
지 정 일 : 1985.08.16
소 재 지 : 전북 장수군 장수읍 사천리 177-1
시 대 : 삼국시대

전라북도 무주군 장수읍 해발 800m의 산능선 정상에 자리하고 있는 산성이다.

합미성이란 이름은 후백제 때 성에 주둔한 군사들이 먹을 식량을 모았다하여 붙여진 것이라 하는데, 당시 군사들이 쓸 물을 땅속으로 보내던 수로관 시설이 현재까지 남아 있다.

성의 둘레는 970척(320m)이며, 높이는 바깥쪽이 15척(4.6m), 안쪽이 5척(1.6m)이다. 현재 대부분의 성벽은 무너져 내린 상태이며, 다만 북서쪽과 남쪽의 일부 성벽만이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 있다.

이 수군터는 와전되어 오늘날에는 쑤구머리로 전해지고 있다. 성터에서 3㎞쯤 떨어진 곳에 신무산이 있는데, 이곳에 허수아비로 군사를 만들어 적군이 합미성으로 오지 않고, 신무산으로 유인하여 적을 무찔렀다고 한다. 지금도 성터가 남아있으며,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땅속을 파보면 불탄 쌀이 나왔다고 전해진다.

[3] 타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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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종 목 : 전라북도 기념물 제83호
지 정 일 : 1993.08.31
소 재 지 : 전북 장수군 천천면 장판리 산21
시 대 : 조선시대

장척 마을의 산 기슭 도로가에 자리하고 있는 비로, 현감을 따라 순절한 통인(관아에 딸려 잔심부름을 하던 벼슬아치)의 충절을 기리고 있다.

조선시대 숙종 4년(1678) 당시 장수현감을 지내던 조종면은 민정시찰을 나섰다가 이곳 산비탈길을 지나게 되었다. 요란한 말발굽 소리에 놀라 숲 속에 있던 꿩이 소리치며 날아오르고, 이로인해 현감의 말이 덩달아 놀라 한쪽 발을 잘못 디디게 되어 결국 벼랑 밑으로 떨어져 말과 함께 현감도 목숨을 잃고 말았다.

현감을 뒤따르던 통인이 이 광경을 보고는 자신의 잘못으로 현감이 죽게 되었다고 통곡하며 손가락을 깨물어 벼랑 위에 꿩과 말의 그림을 그리고 ‘타루(눈물을 흘리다)’라는 두 글자를 쓴 후 스스로 몸을 던져 순절하였다. 그 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장수현감으로 부임해온 최수형이 이 사연을 전해듣고, 주인을 따라 죽은 그 충성스런 의리를 널리 알리고자 비를 세워 ‘타루비’라 이름짓고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다.

비각 안에 모셔둔 이 비는 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운 간결한 구조이며, 비몸의 윗변 양 모서리를 비스듬히 잘라 다듬었다. 순조 2년(1802)에 세운 비로, 받침부분이 부러져 다시 보수하였으나 역시 볼품이 없어 1881년에 지방민들의 뜻을 모아 ‘장수 순의리비’를 다시 세워 옆에 함께 모셔두었다.

성이 백씨라고만 전하는 이 통인은 논개, 정경손과 함께 장수지역의 3절(절개를 지킨 3인)로 추대되고 있다. 비각 옆 바위 윗면에는 같은 날 생을 마친 조종면 현감을 기리는 ‘불망비’라는 글귀가 남아 있어 더욱 깊은 감회를 가져다 준다.

문화재 관련하여 한걸음 알아가셨길 바라며,
공휴일 하루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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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정보 감사요
즐거운 공휴일 보내시길~~

오늘도 문화재에대해 한걸음 더 알아가네요^^감사합니다!

문화재 공부됩니다 ㅎㅎ
편안한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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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문화재 정보 잘 보고 갑니다!


앞으로도 좋은 포스팅 기대해요, 또 놀러오겠습니다앙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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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배워 갑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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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정보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