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11(일)말이 되는 역사41. 고구려연씨는 항복했지만..

in Avle 종교 철학 인문학21 days ago (edited)

668년에 고구려의 연씨가 항복했지만
당나라 입장에서 그 뒷감당은 쉬운것이 아니었다.

(1)총장(揔章:668~670) 원년 9월에, 이적이 고구려를 항복시키고, 안동도호부를 설치
고구려는 본래 5부(五部)에 176성(城), 호(户)는 69만 7천이었다. 그 해 12월에 고구려 땅을 나누어 9개의 도독부, 42개의 주(州), 100개의 현(縣)으로 삼고,
안동도호부를 평양성(平壤城)에 설치하여 이를 통치하게 하였다. 그 우두머리들을 도독, 자사, 현령으로 임명하고, 설인귀에게 군사 2만 명을 거느리고 안동부를 진수하게 하였다.
(2)상원(上元:674~676) 3년(676) 2월에 요동군(遼東郡) 옛 성으로 옮겨 설치했다.
(3)의봉(儀鳳:676~679) 2년(678)에 다시 신성(新城)으로 옮겼다.
(4)성력(聖曆:698~700) 원년 6월에 안동도독부로 개칭되었다.

연씨형제가 항복한후에 잘알려진 안동도호부가 설치되었는데,
8년후부터 여기저기로 옮겨다니기 시작한다. 그리고

698년 대조영 발해건국

그 다음의 상황을 보면,

(5)신룡(神龍:705~707) 원년에 다시 안동도호부로 복구되었다.
(6)개원(開元:713~741) 2년(714)에 안동도호부를 평주(平州)로 옮겨 설치했다.
(7)천보(天寶:742~756) 2년에 요서(遼西) 옛 군성(郡城)으로 옮겨 설치했다.
(8)지덕(至德:756~758) 이후에 폐지되었다.

행정중심이 옮겨다니는 이유는 한가지,
더이상 그 지역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구려정도의 큰 나라는 지배세력이 항복하더라도
그냥 삼킬수 있는 규모가 아니다.
그것도, 조선인의 특성을 생각했을때..
그리고, 안동도호부가 있었던 평양성은 지금의 평양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