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사변 육군전사 2권(24)

in #avle2 months ago

6월 27일의 정황(부도 제15참조)

전일 주간의 순서(順序)로운 전투 끝에 진지에서 밤을 새운 아 제8사단은 숙야(夙夜: 이른 아침과 깊은 밤)에 걸쳐 불효(拂曉: 날이 막 밝을 무렵)공격을 준비하였다. 또한 아군 장병들은 전일 주간의 아 포격이 우세하였음에 감하여 필승의 확신을 견지하고 주문지 탈환을 목표로 총 공격 명령의 하달을 대기하였다.

그러나 04:00경 적은 의외로 아군에 대하여 선제불효공격을 감행하여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기왕성한 아군은 반격을 감행하여 적을 일시 격퇴하였으나 적은 전선에 걸쳐 공격을 계속하고 아군은 06:00경에 이르러 비로소 총공격명령을 받게 되었다. 피아의 지원사격은 점차 치열해지고 아군의 포격은 적에 비하여 정확하였으나 작일의 상황과는 판이하여 적의 포격은 치열하였다.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적 포격은 점차 맹열화하여 아군 진지를 위압(威壓)하였다. 이때에 주저항선에 배비되었던 아 공병 1개 중대가 교대 명령을 받아 후방으로 이동하게 되자 적과 격전을 거듭하던 아군은 이를 철수로 오인하고 전군이 점차 후퇴하게 되어 07:30 아 주력부대는 석교리 예비진지까지 부득이 후퇴하였다. 이리하여 주저항선이 붕괴됨으로 후퇴 명령이 하달되어 주력은 난곡리, 원통리 수용진지에 철수를 개시하였다. 주저항선의 불의 붕괴에 철수의 시기를 면한 석교리 배치의 포병대는 대장의 비장한 지휘하에 최후까지 적과 격전을 전개하여 최후에는 적 보병의 소총부대를 평사로 격파하는 유례없는 전투가 전개되었다. 보병의 지원 없는 포병대의 단독전투가 성공될 리 없어 포 2문을 파괴하고 부득이 강릉으로 후퇴하였다.

적 포의 우세한 엄호사격과 보병 2개 연대병력의 공격으로 주저항선이 붕괴된 후 사단은 강릉을 사수하려 하였으나 주저항선을 점령한 적은 압도적으로 우세하였고 한편 강동지구에 침입한 적이 강릉 배후를 위협함으로 사단장은 강릉으로부터 대관령으로 철수키로 결심, 강릉 북방에 전 포열을 배치 맹렬한 견제 사격하에 사단 주력은 수용진지로부터 강릉에 집결, 대관령으로 이동하였다. 이날은 우중임에도 불구하고 식량, 탄약 등 군수품을 동원된 군민 차량 300여 대로써 이날 이른 아침부터 대관령 혹은 진부로 이동중에 있었다. 실로 제8사단의 성공적인 지연전은 막대한 군수품의 이동이 강릉 철수 전에 순조롭게 완료되는데 많이 기인되었다고 할 것이다.

강릉 북방 4㎞ 지점에서 아 엄호부대와 대치 중이던 적은 20:00를 기하여 아 진지 및 강릉에 연속 포격을 가하여 왔다. 적 포탄은 강릉 사단사령부 부근 일대까지 낙하되어 적과 대치 중이던 아 엄호부대는 아 포병과 협동 하에 피해 없이 대관령으로 철수하였다. 강동 방면의 아군은 상기 강릉 철수와 시기를 같이 하여 강동지구 배비의 제21연대 제6, 제7중대를 엄호부대로 잔치하고 강릉시가를 경유, 대관령으로 집결하였다. 그리하여 사단은 24:00 현재 광원리에 위치한 부대 및 강동지구 2개 중대를 제외한 전 보병부대는 대관령에 집결을 완료하였다. 이에 앞서 21:50 적 선발대는 강릉에 돌입하였으며 강동지구 엄호부대로서 적을 견제한 아 제21연대 제6, 제7중대는 도보로 삽당령(揷塘嶺)을 경유, 대관령으로 향하였다.

6월 28일의 정황(부도 제16 참조)

강릉 외곽선에서 대기하던 적은 강릉에 돌입한 선발대의 신호탄 신호로 01:00 강릉으로 침입, 일부 병력은 자동차로 사단 연병장으로 집결하고 즉시로 강릉경찰서 싸이렌을 취명(吹鳴: 싸이렌 등을 울림), 피난민의 귀환을 권하였으며 군경 가족 및 우익진영 인사의 학살을 개시하였다.

사단은 대관령에 집결 후 28일 불효까지의 간에 병력의 재편과 군수품의 정비를 완료, 전투사령부를 유천(楡川)에, 보급집적소를 진부에 설치하였다. 제21연대는 횡계리에 연대 주력을 두고 대관령을 확보, 제10연대는 유천에 주력을 두고 제1대대는 운두령에서 적과 대치 중이었다. 사단장은 주문진 방면으로부터 남하 중이던 적 일부 병력이 송림리를 경유, 월정사 방면으로부터 동강도로(東江道路)로 진출할 우려가 농후하다는 정보에 접하여 제10연대 1개 중대를 월정사 방면에 배치하였다. 21:40 사단장은 육군본부에 현황을 보고, 차후 지시를 문의하는 동시에, 별명이 없으면 경강도로(京江道路)를 확보하여 호기를 포착하여 공세로 이전하겠다는 취지를 타전하였던 바 아무런 응신이 없고, 수분 후에 육군본부의 수원 이동 전문이 입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