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쟁이, 시 감상
함께 손을 잡으면 절망도 넘어서요
하영란 기자 승인 2024.02.14 21:39 댓글 0기사공유하기
시를 통해 삶을 묻다 ⑦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
혼자 힘으로 절망 탈출 어려워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극복
"담쟁이 잎 하나, 수천 개 이끌고"
지금의 시대는 자살의 시대다. 외로워서 죽고 가난해서 죽고 힘들어서 죽고 우울해서 죽는다. 어떤 학자는 지금 이 시대에 태어난 사람이 가장 비참하다고 했다. 바로 비교 지옥 때문이다. 개별자 한명 한명은 똑똑하고 잘났는데 비교하는 순간에 순위가 곤두박질치며 추락한다. 자존감을 아무리 가져도 눈이 있고 귀가 있으니 보이고 들린다. 비교 지옥이 있는 한 우울해진다. 이 우울감으로 인해 실제로 죽지는 않는다고 해도 하루에 수십 번 자신을 죽인다.
절망을 부르는 시대다. 환경 오염, 이상 기온, 물가 상승, 전세 사기, 부도, 불안한 취업 등 열거가 힘들다. 기술 혁명으로 인간은 일자리에서도 쫓겨나고 있다. 사물로 취급되고 있다. 어찌 절망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절망이라고 생각해서 앞이 보이지 않을 때 우리가 함께 길을 나아간다면 분명 희망은 있지 않을까? 우리 안에 답이 있다. 지금까지 존재한 모든 전제를 깨고, 함께 손을 잡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을 때 읽고 싶은 시 도종환의 '담쟁이'가 있다. 이 시를 읽으면 없던 힘이 밑바닥 어디에서 샘물처럼 솟아난다.
인간을 위해 만든 것이 인간을 힘들게 한다. 균형을 잡지 않을 때 인간이 만든 것에 스스로 먹히고 만다. 자신이 만든 것에 중독되고 파멸되는 존재가 인간이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마비시키면서 온갖 중독 속에서 살고 있다. 각종 게임, 술, 담배, 마약, 도박 등과 지나친 미래를 향한 꿈과 욕망이 힘들게 한다. 우리 이제 다 같이 손을 잡고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
지금은 일을 하고 싶다고 일자리가 생기는 시대가 아니다. 게을러서 일자리가 없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다. 시대가 달라진 만큼 사고가 달라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 무한 욕망의 질주를 스스로가 바라보면서 담쟁이가 벽을 넘어가듯이 아주 천천히 그 질주의 속도를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해 봐야 한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혼자 하는 고민은 안 된다는 것이다. 혼자는 힘이 없다. 이 절망의 시대를 이길 방법은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고속도로 옆 방음벽을 타고 오르는 수많은 담쟁이넝쿨을 만나게 된다. 90도의 벽을 멈추지 않고 아주 천천히 오른다. 마치 절망이란 없다는 듯이 묵묵히 타고 오른다. 혼자 오르지 않고 동료의 손을 잡고 오른다. 담쟁이는 무심코 올라가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만의 리듬으로 예술작품을 창조하면서 황량한 회색의 방음벽에 그림을 그리고 물을 들인다. 담쟁이들이 손을 잡고 오르면서 함께 예술작품들을 만들어낸다. 이 시의 시적 화자는 담쟁이처럼 절망의 순간에 손을 놓지 말고 꼭 잡고 가보라고 한다. 그러면 비로소 절망을 넘어서 있을 것이라고 한다.
담쟁이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잎 하나는 담쟁이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 도종환 시선집 '밀물의 시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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