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장
할머니 장례 절차를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사실 우리가족만 멀리 살아서 식장에서 밤을 새고, 나머지 친척들은 집이 주변이라 저녁 늦게는 다들 들어가 자긴 했는데, 다른 식구들 역시 정신이 없을 거긴 하다. 할머니의 자식들(삼촌, 고모들)이 많아서 그런지 사람들이 꽤 많이 왔고, (반 이상은 아버지와 관련된 분들이 오시긴 했다) 나는 장손으로 사람들 오면 같이 절하고 이름 적고 뭐 이런 일을 했다. 사람이 없을 때는 핸드폰에 논문, 교과서 넣어간거 좀 보긴 했는데, 뭐 텍스트를 별로 좋은걸 안 골라서 그런지 눈으로 읽어도 뭔 말인지 이해가 잘 안가는 구문들이 많아, 형광펜만 덕지덕지 칠해진 pdf가 되어버렸다. (이럴줄 알았으면 조금 읽을만한 논문들을 핸드폰에 넣어올걸.... 한참 읽었던것들은 다 지우고 좀 지루한 내용들만 남아있었는데.... 뭐 원래 읽을 생각이 없었다가 대기하는 시간이 좀 있자 시간 때우려고 본거긴 한데...)
마지막 날 영정사진을 들고 장례 절차들을 진행하면서, 상실의 실감이 커져 참 많이 울었다. 나란 사람이 원래 눈물이 참 많은 사람이긴 한데, 오늘은 그냥 이런저런 불교 용어들이 머릿속을 가득찬 그런 날이었다. 사실 이번 장례식에 할머니 친구분들이나 할머니가 독실하게 다녔던 교회쪽에는 연락을 안했는데, 아버지가 굳이 연락하지 말자고 하시더라. 아파트 위층 아래층, 평소 할머니와 친분이 깊었던 그분들에게는 따로 인사라도 해야 하는게 아닌가 싶긴 한데, 이제 그 집은 사실상 빈집이 되어 버렸으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3년, 할아버지를 따라간다고 입버릇처럼 이야기 하시던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 그 충격인지 모르겠지만, 치매 초기 증상을 진단 받고, 요양 유치원에 다니신지가 이제 1년, 이렇게 쓰려지셔서 그 충격으로 돌아가시게 될거라곤... 먹을거 잘 드시고 잘 움직이셔서 백세 가까이 사실거 같다고 이야기가 나오기가 종종 나오고 그랬었는데, 한번 발을 잘못 딛으셔서 이렇게 돌아가시게 되니까.... 마음이 아프다.
나이들면 화장실, 침대 이런 곳이 정말 위험한 곳이 되나보다. 낙상사고의 위험.... 할아버지 때는 코로나도 있고 해서 그렇다 했는데... 뉴스로만 TV로만 낙상사고가 위험하다 이야기만 들었었고 심각하게 이런것들에 대해서 고민하고 하지 않았었는데 이게 이렇게 되어버렸다....
사고 이야기를 듣고, 나중에 우리 집에 침대도 좀 낮은걸로 바꾸고, 화장실도 벽에 손잡이 같은것도 붙이고 뭔가 이런것들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닥도 덜 미끄러운 걸로하고, 변기도 좀 더 낮은 걸로 하고... 침대도, 식탁도 좀 더 낮은 걸로, 그리고 지금은 다시 집에 들어와 부모님이랑 같이 살고 하니까, 그리고 아직 많이 젊으시니까 혼자 헬스도 열심히 하시고 영양제나 이런것도 보충해놓고 하긴 하는데.. 생각해보면 지난주 어머니가 넘어지셔서 크게 다쳐서 내가 뭐라고 했었기도 했었고... 진짜 낙상사고, 길이나 이런곳에서도 넘어지고 그런 가능성 이런것들에 대해서 보다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래도 할머니, 할아버지 두 분 모두 병치례를 오래 하며 병원에서 장기입원 하시다가 돌아가신게 아니라 집에서 이런 사고로 돌아가신거라, 입원으로 인한 고생을 오래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낫다고 해야 하나...
장례식장에 올 때, 이제는 편히 쉬시라고 맘편히 보내드릴 생각만 하자 다짐 했었는데, 오늘 위패와 영정사진을 들고 그 먼 곳들을 돌아다니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특히 마지막 절차에서, 이제는 가족들 걱정 하지 마시고 편히 쉬시라고 계속 되내어도 마지막 까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장손이라고 해도 내가 성인이 되어 경상도에 10년 넘게 살게 되면서, 찾아가는 횟수도 많이 줄고, 딱히 크게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싹싹하게 굴진 않았는데, 그래도 언제나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계시고, 어렸을 때 내가 격주로 교육 받으면서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서 점심먹고 약수터도 가고 했던 기억이 나서 그런지.....
이럴 땐 그냥 세상의 진리를 탐구하겠다고 하지 말고 그냥 의학 쪽을 계속 밀고 나갔어야 하지 않았나란 생각도 든다. 특히 요즘 들어 아버지, 어머니를 보면서 건강 관리를 시키고 하는 과정에서 내가 우주가, 세상이, 자연 법칙이 진리가 어쩌구 저쩌구 하는 이야기보다, 의사가 됬어서 병원에 모셔 진료 해드리고 하는게 더 아버지, 어머니에게 더 좋지 않을까란 생각도 들고 그랬다. 도올 선생님 처럼 다시 수능을 쳐서 의대 입학을 하고 의사의 길을 가야 하나란 생각도 들다가... 요즘 정리하고 있는 종교학이나 존재론에 관한 철학 이야기를, 나만의 깨달음을 얻어 이를 마무리하는 일을 통해 자기만족과 해탈의 길을 끝까지 가고 싶다란 생각, 현실에 안주해서 그냥 내 공부, 연구나 하면서 연구비로 학회나 다니며 맛있는거나 먹고 살자, 회사가서 돈이나 그냥 많이 벌고 그 돈으로 효도하거나 개인의 영달을 누리자 등등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이런 잡생각을 안하려면 그냥 읽는것도 아니고 계산거리 받아서 하루종일 계산만 하고 있으면 되긴 하는데... 일단 345 힘들게 계산한거 정리해서 논문들, 보고서 쓰는것이 지금 주 업무라 그것도 넉넉지 못한 상황이다. 원래 이번주에는 그래도 version 2는 끝내자 했던 것이 이런저런 회의도 갑작스럽게 잡혀서 미뤄지고, 또 이런 상도 생기고 해서, 예정보다 많이 뒤로 가고 있다. 다음주 디스커션 때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할머니, 할아버지, 이제는 자식들 생각말고 편히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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